죽음과 삶의 아름다움
팽영일
얼마 전 추석 성묘를 다녀오며, ‘문득 우리가 죽은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았다.
그런데 너무나 건강하게 살던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 암을 극복하나 싶었던 고교 동기생의 죽음, 영국 및 영연방 시민들과 70년간 삶을 함께 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을 비롯하여 도처에 흩어져 있는 죽음의 소식을 들으며 또, 국회에서는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되어 있다는 소식 등을 보며, 죽음은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이상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현실 지향의 철학자로 알려진 크세노폰은 기원전 426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나 기원전 355년경 코린토스에서 죽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스승 소크라테스의 인품과 산파술에 대한 기록 등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현실을 중시한 실리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일화 중에 크세노폰이 희생양을 제물로 한 제사를 집행하고 있을 때 가장 충직한 하인이 달려와 급한 소식을 알렸다. 크세노폰이 아끼고 사랑하던 큰아들 폴로스가 전사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아들 폴로스는 너무나 용맹하고 훌륭한 장수이었기에 그가 전장에서 죽으리라는 소식은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정도였다.
크세노폰은 제사를 진행하고 있던 중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잠깐 제례를 멈추고, 어떻게 죽었는지 묻고는 선봉에 서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진행 중이던 제사를 그대로 계속하였다. 이를 본 그의 가장 충직한 하인은 가장 아끼고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도대체 주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주인에게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엄숙한 자리에서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있을 수도 없었다. 마침내 제사가 끝나고 희생 제물을 나누어주고 난 뒤 널리 펼쳐진 평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크세노폰에게 다가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아들을 잃었는데 어떻게 눈물을 참을 수 있는지 물었다. 이 말을 들은 크세노폰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아들 “폴로스를 낳았을 때부터 그 아이가 언젠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갖고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인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입에 올리기 싫어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죽음을 연구하는 죽음 학자들은 죽음은 곧 삶의 종말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삶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례를 보거나 집에서 숨을 거두게 되니 사람의 죽음을 보고 느끼며, 직접 죽음을 접촉하며 사는 기회가 있었으나, 요즘은 요양병원이나 병원의 중환자실, 장례식장에서나 목도할 수 있는 현상으로 변화됐다.
죽음을 접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느끼고 배우면서 지냈지만, 현대인들은 의료시설에서 보호자와 격리된 채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죽음은 자기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때, 우리들은 스스로 미리 자신의 죽음에 대처해야 하게 되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방정맞거나 재수가 없는 일로 꺼려 하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사후로 남겨두고 삶만 이야기하자는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수용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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