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사계

인생 스케치

김욱진 2010. 5. 21. 20:59

                인생 스케치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네

내 몸이라 여겼던 병아리 같은 자식도

질경이, 꽃다지, 쑥부쟁이들 마냥

언젠가는 길섶에서 먼지 덮어쓰고

저 홀로, 묵묵히 살아가야 함을

해질 무렵 피어오르는 분꽃들의 손짓에도

눈 부릅뜨고 퍼부어댈 마누라의 홀대에도

그냥 그런 표정 지어 보이며

강물처럼 유유히 살아가야 함을

 

쉰이 내려다보는 이즈음

눈감고 숨 고르는 사이

어깨 위로 이름 모를 새 날아와

속살마저 후벼파며 집을 지어도

따스한 눈빛으로

새 이름을 불러주던 어느 시인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누군가에게

별이 되고 꽃이 되어 다가가야 함을

나는 알았네

 

그러다 이순이 되면

잠 못 든 당신의 영혼 곁에

꽃과 새와 나무들 찾아와 속삭여주듯

저마다 뿌리내린 사계四季의 무늬가

둘이 아닌 하나로,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덧없이 얽혀 있음을 절감하며

 

일흔 지나 여든이 되어도

세월에 찌든 나의 관 뚜껑을 열고

가만히 웃음 지어줄 전생의 도반道伴 같은

가랑잎 하나 벗하며

그렇게 깨어 살아야 함을

나는 알았네

 

 

 

 

 

 

'♧...비슬산 사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섣달그믐밤  (0) 2010.05.21
고요의 성자  (0) 2010.05.21
공룡, 발자국  (0) 2010.05.21
갓바위 돌부처  (0) 2010.05.21
매미  (0)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