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스케치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네
내 몸이라 여겼던 병아리 같은 자식도
질경이, 꽃다지, 쑥부쟁이들 마냥
언젠가는 길섶에서 먼지 덮어쓰고
저 홀로, 묵묵히 살아가야 함을
해질 무렵 피어오르는 분꽃들의 손짓에도
눈 부릅뜨고 퍼부어댈 마누라의 홀대에도
그냥 그런 표정 지어 보이며
강물처럼 유유히 살아가야 함을
쉰이 내려다보는 이즈음
눈감고 숨 고르는 사이
어깨 위로 이름 모를 새 날아와
속살마저 후벼파며 집을 지어도
따스한 눈빛으로
새 이름을 불러주던 어느 시인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누군가에게
별이 되고 꽃이 되어 다가가야 함을
나는 알았네
그러다 이순이 되면
잠 못 든 당신의 영혼 곁에
꽃과 새와 나무들 찾아와 속삭여주듯
저마다 뿌리내린 사계四季의 무늬가
둘이 아닌 하나로,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덧없이 얽혀 있음을 절감하며
일흔 지나 여든이 되어도
세월에 찌든 나의 관 뚜껑을 열고
가만히 웃음 지어줄 전생의 도반道伴 같은
가랑잎 하나 벗하며
그렇게 깨어 살아야 함을
나는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