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스크랩] 고속도로 4 / 김기택

김욱진 2012. 12. 9. 09:25

고속도로 4 / 김기택

 

 

트럭 앞에 속도 하나가 구겨져 있다.

부딪쳐 멈춰버린 순간에도 바퀴를 다해 달리며

온몸으로 트럭에 붙은 차체를 밀고 있다.

찌그러진 속도를 주름으로 밀며 달리고 있다.

찢어지고 뭉개진 철판을 밀며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창을 밀며

튕겨나가는 타이어를 밀며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

겹겹이 우그러진 철판을 더 우그러뜨리며 달리고 있다.

아직 다 달리지 못한 속도가

쪼그라든 차체를 더 납작하게 압축시키며 달리고 있다.

다 짓이겨졌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속도가

거의 없어진 차의 형체를 마저 지우며 달리고 있다.

철판 덩어리만 남았는데도

차체가 오그라들며 쥐어짠 검붉은 즙이 뚝뚝

바닥에 떨어져 흥건하게 흐르는데도

속도는 아직 제가 멈췄는지도 모르고 달리고 있다.

 

 

<김기택시인>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태아의 잠 』『 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
『 소』『 껌』등

출처 : 월암 문학카페
글쓴이 : 월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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