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행복채널

김욱진 2013. 6. 13. 20:40

   

         행복채널

                  김욱진

 

 

  

가끔 채널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묏등에 염소 고삐 풀어놓고

술래잡기하며 뒹굴던 코흘리개 시절로

어머니 손잡고

산비탈 굽이굽이 돌아 외갓집 가는 길

어스름 서리하던 복숭나무 아래로

꽁보리밥 싸가는 게 부끄럽다고

생떼부리며 드러누웠던 골목길로

고지박이 한 짐 걸머진 지게머리

참꽃다발 수북 꽂아 버텨두고

도랑가재 잡아 구워먹던 불알들 곁으로

성황제 지낸 고목 아래 함초롬 밝혀둔

불 종지 몰래 주워와 시렁에 모셔놓고

집안 액운 다 태워달라며

밤새 빌던 정월 대보름 새벽 달빛 속으로

푹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 내 맘속의 주파수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행복채널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녹색 신호등 앞에서

강생이 한 마리가 내 채널을 휙 돌려놓고 갈 때도 있다

 

 

             (2013 동리목월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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