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널

이사

김욱진 2013. 10. 17. 21:15

 

                              이사

 

 

 

어머니

얼마 전 외딴 곳 홀로 이사 가셨다

기별 뜸하시더니, 그 사이

저승꽃 거뭇거뭇 핀 노보살 몇 분

대엿새 묵어가셨단다

오줌 줄 같은 긴 대롱

거죽으로 다 드러내놓고

세 들어 사는 기름보일러가 그런다

혈압당뇨 수치보다 더 무서운 게

집주인 눈치 보며 사는 거라고

팔다리 저리고 뼈마디 쑤셔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이제 몸 져 누우실 거라고

느닷없이 바람 찾아와 그런다

속 골병든 노구 끌고

지 짝 없이 오래 살다보면

자식 놈들마저 업신여긴다고

이젠 영영 멀리 떠나자고

지난겨울 아버지 제사상에

그 흔해빠진 소고기 한 점 없다며

먼 산만 바라보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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