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널

할머니 산소에서

김욱진 2013. 10. 17. 21:21

 

   할머니 산소에서

 

 

 

할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갔더니

봉분 언저리 보초 서있는

땅벌 몇 마리 날아와 불심검문을 했습니다

차마 손자라는 말 하지 못한 채

가자미처럼 엎드려

벌들에게 먼저 술 한 잔 부어줬습니다

억새풀이 허기진 듯 덥석 받아마셨습니다

또 한 잔 부어 할머니 머리맡에 받혀놓았더니

술은 바람이 와서 마시고

안주는 개미가 먹었습니다

살아생전, 제사상에 올렸다 숨겨둔 오징어 구워

몸통은 날 주고 뒷다리만 우물우물하시던 할머니

저 개미들조차 손자처럼 보이시나 봅니다

취기 오른 벌들도 할머니 등에 업혀 춤을 춰댑니다

나도 덩달아 어깨춤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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