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사에 가다
-비슬산8
온통 야단법석이다 법당 앞마당 가랑잎들, 석탑 언저리 기웃거리는 저녁 햇살 등에 업고 돌계단 엉거주춤 내려선다. 겹겹이 포개진 눈빛 새로 노잣돈 조르듯 지나가는 풍경소리, 허공으로 내 발꿈치 떠밀어 올린다
맨 아래 깔린 잎은 의식 불명 상태
내 발목 꽉 잡았다 스르르 놓고 마는 잎맥들의 혈압이 푹푹 떨어지고 있을 무렵, 연못가 우물쭈물하던 바람 한 무더기 약사여래불 곁으로 달려와 졸고 있는 노랑턱 멧새의 겨드랑일 간질여댄다. 신라의 혼불 활짝 지핀 비슬산 늑골 틈새로 솟아오르는 금수정金水井 약수, 발가락 적신 새 한 마리 총총 날아와 뭉그러진 잎들의 실핏줄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전생의 빚을 갚듯
어느새 돌층계 저만치 미끄러져 깨금발 딛고선 햇살, 가랑잎 다칠세라 도랑 섶 쪽으로 슬몃 발길 돌린다. 명부전 관세음 부처님 터벅터벅 걸어 나와 돌부리에 멍하니 서 있는 느티나무 그림자마저 움푹 뽑아들고 제 방으로 황급히 들어서는 찰나
가랑잎들의 소재가 묘연하다
(시문학 200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