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의 나
-비슬산9
내 가슴 속에서 웅크리고 울던 귀뚜리 울음소리, 밤새 번지고 번져 메아리처럼 번져 산봉우리 비며대며 날아오른다. 문필봉 휘돌아 관기봉 너머 눈 푸른 도성선원 스님들 마음 귀퉁이 지나 바위틈 새어나오는 법문 몇 모금 받아 마시고 내 품으로 되돌아오는 메아리. 물안개 포근히 덮고 누워 잠든 대견봉 등성이 잠시 기대어 숨 한번 고르고, 봉우리마다 점점이 세 놓으며 비스듬히 걸어 내려온다. 깨금발 딛고 여기저기 오가는 가랑잎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입 떡 벌린 밤송이 아래서 도랑 가재 잡아 구워먹는 동네 꼬마들의 배만 부르다. 석류 익은 토담집 마당 한 구석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내 그림자 밟으며 지나가는 귀뚜리 한 마리
(시문학 등단작 200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