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

김욱진 2015. 10. 29. 17:10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

 

 

 

되돌아보니

당신이 볼을 던졌을 때

나는 스트라이크인 줄 알고 받아쳤고 

당신이 마음먹고 스트라이크 던졌을 때

나는 볼인 줄 알고 받아친 게

무려 9할이 넘는다

당신이 던진 공을, 나는  

언제나 되받아쳐야만 되는 줄 알았다

방망이가 자주 부러지고

타율이 급격히 저조해짐을 알고부터

나는 다급히도 당신의 슬로우 볼을 기다렸다 

역으로, 당신이 빠른 직구를 날렸을 때  

나는 되받아칠까말까 망설이다 

그냥 꼼짝없이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섣불리 볼에 방망이 휘두르다 

내야 플라이 아웃으로

온 집안이 쑥대밭 되는 날도 일쑤였다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

비켜가는 공은 늘

나의 눈높이와 마음 속도를 훔쳤다 

여태 홈런 한 방 노리고 살아온

나는 지금

9회 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상황에서

겨우 허황된 꿈 한 방 날렸다 

삼십 년을 함께 살고도

당신의 타구 가늠하지 못한 죗값  

담장 넘어간 야유 소리만큼이나 크다

 

 

   (문예감성 2015가을/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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