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옷 한 벌
부모로부터 잠시 빌려 입은
몸옷 한 벌
어지간히도 간수하기 힘들다
어릴 적
고주박이 한 짐 걸머지고
새 옷 자랑하며
가파른 산길 내려오다
무릎 인대 팍 터져 올올이 기웠는데
서울 사는 대학친구
열차표 예매하러 갔다
자전거 타고 뒤집어지는 바람에
왼쪽 대퇴골 부러져 간신히 접붙이고
석 달 간 옷장 속에 갇혀
곰삭은 보릿대처럼 누워 있었는데
음주 운전한 직장동료 옆자리
바짝 붙어 앉아가다 전봇대 부딪혀
골골이 부서진 오른팔
꼬박 여섯 달 깁스했다 풀었는데
간간이 남루한 옷 걸친 살붙이 몇 찾아와
이제 평생 액땜 다했다며 다림질해주길래
후유, 한 숨 돌리고
헐렁해진 옷 땀땀이 손질하던 참
난데없이 콩팥 주머니 못된 혹 생겨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해진 데 터진 데 깁고 깁은
누더기 옷 한 벌
바람벽 한 모퉁이 너덜너덜 걸려있다
(문예감성 2015가을/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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