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몸옷 한 벌

김욱진 2015. 10. 29. 17:12

             몸옷 한 벌

  

 

 

부모로부터 잠시 빌려 입은  

몸옷 한 벌 

어지간히도 간수하기 힘들다

 

어릴 적

고주박이 한 짐 걸머지고

새 옷 자랑하며

가파른 산길 내려오다  

무릎 인대 팍 터져 올올이 기웠는데

서울 사는 대학친구

열차표 예매하러 갔다

자전거 타고 뒤집어지는 바람에

왼쪽 대퇴골 부러져 간신히 접붙이고

석 달 간 옷장 속에 갇혀

곰삭은 보릿대처럼 누워 있었는데

음주 운전한 직장동료 옆자리 

바짝 붙어 앉아가다 전봇대 부딪혀  

골골이 부서진 오른팔

꼬박 여섯 달 깁스했다 풀었는데

간간이 남루한 옷 걸친 살붙이 몇 찾아와

이제 평생 액땜 다했다며 다림질해주길래

후유, 한 숨 돌리고

헐렁해진 옷 땀땀이 손질하던 참

난데없이 콩팥 주머니 못된 혹 생겨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해진 데 터진 데 깁고 깁은

누더기 옷 한 벌

바람벽 한 모퉁이 너덜너덜 걸려있다

 

  (문예감성 2015가을/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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