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우파/ 허파
김승희
시계 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고,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바빠도 벽에 걸린 시계 한번 보고 나서 말해라
세수는 두 손바닥으로 우편향 한번 좌편향 한 번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야 낯바닥을 온전히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시계바늘도 세수도 구두도 스트레칭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은 돌아간다
벌써 구두의 한쪽은 좌파이고 또 다른 쪽은 우파이다
그렇게 좌우는 홀로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구는 돈다
좌와 우의 사이에는
청초하고도 서늘한, 다사롭고도 풍성한
평형수가 흐르는 정원이 있다
에덴의 동쪽도 에덴의 서쪽도
다 숨은 샘이 흐르는 인간의 땅
허파도 그곳에서 살아 숨 쉰다
ㅡ《시작》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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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197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태양 미사』『냄비는 둥둥』『희망이 외롭다』등. 소설집『산타페로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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