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하류/이건청

김욱진 2010. 10. 14. 10:27

       하류

              이건청

 

 

 

거기 나무가 있었네.

노을 속엔

언제나 기러기가 살았네.

붉은 노을이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면

거기 나무를 세워 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네.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 하늘 아래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네.

발뒤축을 들고 바라보았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희미한 하류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었네.

나무가 아이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고 돌아가곤 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일만 마리 매미 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네.

모든 대답이 거기 있었네.

그늘은 백사장이고 시냇물이었으며

삘기풀이고 뜸부기 알이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제는 무너져 흩어져 버렸지만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돼 버렸지만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

스쳐가는 늦기러기 몇 마리 있으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네.

까마득한 하류에 나무가 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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