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두레반

김욱진 2019. 12. 6. 15:18

       두레반

 

 

모처럼, 미수米壽를 바라보어머니가 손수 장만한 칼국수

온 가족이 두레반에 둘러앉아 후루룩 소리 내어 먹는다

주물럭주물럭 반죽한 밀가루 안반 위에다 올려놓고

풍진 세상 모퉁이 돌고 돌아 

홍두깨로 모난 녀석 볼 한 번 더 비벼주며

키 몸무게 자로 재듯 빚은 손칼국수

어머니 손맛이 절로 느껴지는 저녁이다

바른손 새끼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올 상 싶으면

약지 중지 손구락은 원을 그리며 다독이고

왼손 엄지 중지에 지그시 실어주는 어머니의끝은

섬섬옥수다 

둥근 세상 일궈가는 어머니 손놀림 어깨 너머로 훔쳐보며  

우리 칠남매는 저마다 한 가락씩 하는 손가락을 내밀고

겻불에 국수 꼬랑지 구워 나눠먹는 법 익혔다

그러는 사이, 바람에 밀리고 밀린 안반은 헛간으로 밀려나버렸고

한평생 국수만 밀어댄 홍두깨는 부지깽이처럼 가늘어졌다

밀고 당기는 게 뭔지도 잘 모르는 국수 꼬랑지 녀석들은

제 앞길 틔운다며 이곳저곳 떠밀려 다니기 일쑤

세상은 어느새 우리 가족을

두레반 밖으로 제각기 밀어내고 있는 이 마당

한복판에다 나는 어릴 적 둘둘 말아뒀던 멍석을 깔고

마누라는 어머니 대를 이어 국수를 밀고

아이들은 마당 가 피워둔 모깃불 옆에서

앵앵대는 모기처럼 눈물 훔치며 국수 꼬랑지 구워먹고 

저 하늘 별들은 손칼국수 국물에 반짝반짝 빛나는 양념 듬뿍 뿌리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한여름 밤, 저녁은 별미겠다   

 

(죽순 53호)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상한 시국-코로나19  (0) 2020.04.10
노모 일기  (0) 2020.03.16
마음녀석  (0) 2019.09.22
참꽃  (0) 2019.09.22
  (0) 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