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정원 8 -대숲 /장석남 수묵정원 8 -대숲 장석남 해가 떠서는 대숲으로 들어가고 또 파란 달이 떠서는 대숲으로 들어가고 대숲은 그것들을 다 어쨌을까 밤새 수런수런대며 그것들을 어쨌을까 싯푸른 빛으로만 만들어서 먼데 애달픈 이의 새벽꿈으로도 보내는가 대숲을 걸어나온 길 하나는 둥실둥실 흰 옷고름처.. ♧...참한詩 2013.12.29
이사/이병률 이사 이병률 이삿짐을 싸다 말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다 보니 그냥 두고 갈 뻔한 고추 몇 대 미안한 마음에 손을 내미니 빨갛게 매달린 고추가 괜찮다는 듯 떨어진다 데려가 달라고 하지 않으면 모른 체 데려가 주지 않을 生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을 찌르는 매운 물기 ♧...참한詩 2013.12.29
멸치/김기택 멸치 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 ♧...참한詩 2013.12.29
안도현 시인이 추천하는 시 語訥 -김춘수 누가 섬이 아니랄까 봐 저 멀리 그는 바다 위에 떠 있다. 누가 귀양 온 원추리가 아니랄까 봐 섬 한쪽에 그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해가 진다고 물새는 꺼이 꺼이 우는데 오늘도 누가 바다를 맨발로 밟고 간다. 아물 아물 가는 곳이 어딜까. 나는 이렇게 말이 어줍고 그는 결코 .. ♧...참한詩 2013.12.29
폐허라는 것/이규리 폐허라는 것 이규리 허물어진 마음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도 너의 폐허가 되고 싶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겐가 한때 폐허였다는 것, 또는 폐허가 나를 먹여 살렸다는 것, 어떤 기막힌 생이 분탕질한 폐허에 와서 한판 놀고 가는 바람처럼 내 놀이는 지나간 흔적들 빠꼼히 들여다보는 .. ♧...참한詩 2013.12.29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이름 2/ 정일근 |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이름 2 정일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꽃이 피었다 지는 슬픔보다도 나무들이 바람에 우는 아픔보다도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사랑하면 기다리는 것이 기다리며 눈물 훔치는 것이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라 흐르는 눈물 손가락에 찍.. ♧...참한詩 2013.12.29
첫 눈/이정하 첫 눈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 ♧...참한詩 2013.12.29
시월/나희덕 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 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 연.. ♧...참한詩 2013.12.29
주름/박규리 주름 박규리 제 얼굴을 제가 만든다는 말 무엇인가 했는데 지울수 없는 사연 건너뛰지 못한 세월 골골이 주름으로 잡혀 내 얼굴이 되었다 웃음 하나에 주름 하나 서러움 하나에 주름 하나 이렇듯 살가운 사정과 스산한 과거 내게도 있었는가 누군가에게 몸버리고 떠돌던 흔적과 양미간 .. ♧...참한詩 2013.12.29
느슨해진다는 것/이정록 느슨해진다는 것 이정록 병원에서 돌아와 보니, 뒷간에 기대 놓았던 대빗자루를 타고 박덩굴이 올라갔데. 병이라는 거, 몸 안에서 하늘 쪽으로 저렇듯 덩굴손을 흔드 는 게 아닐까. 생뚱맞게 그런 생각이 들데. 마루기둥에 기대 어 박꽃의 시든 입술이나 바라보구 있는데, 추녀 밑으로 거 .. ♧...참한詩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