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조용한 혁명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김욱진 2016. 11. 9. 19:02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어릴 때 꼬드밥 우물우물 씹어

내 입에 넣어주신 할머니 이가 다 빠졌다

거짓말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네 살 아래 여동생 감쪽같이 속여

요리조리 부려먹고 우려먹은 게 수도 없이 많았는데

덜컥 겁이 났다

그 후로 나는 여동생과 얘기할 땐

'참말로' 라는 말을 거짓말처럼 써먹었고

그러면 여동생은 철석같이 믿었다

열 살 되던 해, 어금니가 흔들거렸다

엄마한테 들키면 혼날 것 같아

몇 날 며칠 숨기다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빌었다

할머니 합죽이 웃으며

거짓말처럼 옭아맨 내 어금니

콱 잡아당기며 정수리 팍 내리쳤다

쑥 둘러빠진 이빨 

아궁이 속으로 집어던지며

나 보고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그러란다

이 다 빠진 할머니 거짓말

참말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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