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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 김수영

거대한 뿌리 김수영 ​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15 이후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

♧...참한詩 2023.03.17

봄밤 / 김수영

봄밤 김수영 ​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참한詩 2023.03.17

공자의 생활난

공자의 생활난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난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伊太利語(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참한詩 202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