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정일근 아침에 끓인 국이 저녁에 다 쉬어버렸다 냄비뚜껑을 열자 훅하고 쉰내가 덮친다 이 기습적인, 불가항력의 쉰내처럼 남자의 쉰이 온다 일상의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던 시간의 게릴라가 내 몸을 무장해제 시켜놓고 나이를 묻는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나와 함께 사는 어느 것 하나 나이보다 뒤처져서 천천히 오지 않는다 냄비에 담긴 국을 다 쏟아버렸지만 사라지지 않는 쉰내 냄비를 씻고 또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쉰내 이미 늦었다 나의 생은 부패를 시작했다 내 심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빠르게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