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다 나희덕 조개를 주우러 해변에 갔었어요 검은 갯벌 속의 조개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건 빈 껍데기뿐이었지요 조개를 줍든 이삭을 줍든 감자를 줍든 상자를 줍든 몸을 최대한 낮추고 굽혀야 한다는 것 무엇을 만들거나 사지 않아도 돼요 줍고 또 줍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죠 쓰레기, 라는 말을 너무 함부로 쓰지 않나요? 누군가 남긴 음식이나 물건이 그렇게 표현되는 건 슬픈 일이지요 그들은 버림으로써 남긴 거예요 나의 나날은 그 잉여만으로도 충분해요 어떤 날은 운이 아주 좋아요 누군가 먹다 남긴 피자가 상자째 놓여 있기도 하지요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신선한 통조림 기분좋은 말 몇 마디나 표정을 주워오기도 해요 이따금 인상적인 뒷모습이나 그림자를 줍기도 하지요 자아, 둘러보세요 주울 것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