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 아카시 우윳빛 드레스를 입은 오월의 신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온 몸이 성감대인 듯 숨구멍마다 요염한 귀걸일 달고 바람결 따라 눈웃음치는 향기 벌들은 금세 오금이 저리다 입술 타든 첫날밤처럼 (시인정신 2006 여름호) ♧...발표작 2010.05.23
동상이몽 동상이몽 미국 사람 만나러 간다고 잠마저 설쳐대던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녀석이 멀고 먼 꿈길 따라 백리 남짓 떨어진 오두막집으로 영어 캠프를 떠났다 낭떠러지 같은 2박 3일의 첫날 밤 수신자 부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Hello, Fa Fa I am glad to meet you Good evening Bye-bye 뚜 뚜 뚜…뚜 뚜 뚜… 어릴 적 소고.. ♧...발표작 2010.05.23
농심 농심農心 우르과이 라운드로 기죽은 농심 주인도 없는 논배미 한구석에 여야로 갈라 앉아 모판을 짠다 머잖아 고향 떠날 올챙이들 마냥 잇몸 가려워 오물거리는 볍씨 보살 같은 흙, 겨드랑이 새로 뭇 영혼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어우렁더우렁 살고 싶어라 (2006 시문학 9월호) ♧...발표작 2010.05.23
봄나들이 봄나들이 밤새 누가 울고 갔나 그 여음餘音 따라가 닿은 앞산공원, 실안개 걷힌 길섶 한 모퉁이서 개나리처녀와 벚나무노총각이 혼례식을 올린다 봄의 주례로 나리 양과 벚 군이 향긋한 바람 몇 모금 마시며 입맞춤 하자 꽃 보라 휘날리는 허공으로 새들의 축하 노래 울려 퍼지고 어느 새 하객들과 일.. ♧...발표작 2010.05.23
인생 스케치 인생 스케치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네 내 몸이라 여겼던 병아리 같은 자식도 질경이, 꽃다지, 쑥부쟁이들 마냥 언젠가는 길섶에서 먼지 덮어쓰고 저 홀로, 묵묵히 살아가야 함을 해질 무렵 피어오르는 분꽃들의 손짓에도 눈 부릅뜨고 퍼부어 댈 마누라의 홀대에도 그냥 그런 .. ♧...발표작 2010.05.23
궁노루 이야기 궁노루 이야기 -아버지 떠나신 날 1 일천구백칠십삼년 섣달 초하루, 제 키보다 두어 뼘 정도 작은 지게 어른스레 걸머지고 재 너머 *고지박이 하러간 열다섯 살의 소년. 맞은 편 산등성이서 등걸 줍던 장정들의 고함소리에 길 잃은 궁노루 새끼 한 마리, 겁먹고 달아나다 그만 낯선 올가미에 뒷다리 홀.. ♧...발표작 2010.05.23
12월 12월 꼬마 아이 하나 없는 아파트 놀이터에 바람 혼자 그네를 탄다 두 발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 오므렸다 폈을 것이다 나뭇잎처럼 어수선해진 나의 세포 조각들이 창 너머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 (시문학 2007년 4월호) ♧...발표작 2010.05.23
어른이 되고 싶었지 어른이 되고 싶었지 소꼴 베러 뒷골 가 도랑가재 잡아 구워먹고 허수아비 속 태우며 콩서리하다 그만 밭주인에게 붙잡혀 혼이 나던 어린 녀석 옥수수 대궁처럼 성큼 자라 누군가에게 베풀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 수염만 길게 기르면 될 거라 생각하고 몇 날 며칠 할머니 머리맡에 빠진 흰 머리칼 .. ♧...발표작 2010.05.23
우체통 우체통 아직도 내 전생의 주소와 이름과 얼굴마저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은 우체통에 도둑 들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모래알처럼 파삭파삭해진 세상인심 속에서도 언제나 문 활짝 열어 두고 사는 집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방에서 처음 만난 인연들 겹겹이 포개고 누워 하룻밤 묵어가는 .. ♧...발표작 2010.05.23
거미 거미 떠돌다, 또 날이 저문다 의뭉스러운 겹거미 한 마리가 허공에 집을 짓는다 석류 입술에 살몃 기댄 햇살 몇 줌 주워 기둥 세우고 수런거리는 갈바람의 그늘 아래 한가로이 걸터앉아 투기꾼마저 눈치 채지 못한 그곳에 얼기설기 줄을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고추잠자리 서너 마리가 하룻밤 묵어갈 .. ♧...발표작 201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