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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 한용운

언젠가는한용운  ​언젠가... 말 못할 때가 옵니다. 따스한 말 많이 하세요. ​​언젠가... 듣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값진 사연 값진 지식 많이 보시고 많이 들으세요.​​​언젠가... 웃지 못할 때가 옵니다. 웃고 또 웃고 활짝 많이 웃으세요. ​언젠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가고픈 곳 어디든지 가세요. ​​언젠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옵니다. 좋은 사람 많이 사귀고 만나세요. ​언젠가...감격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마음을 숨기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고 사세요.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참한詩 2024.12.02

브레이크 타임

브레이크 타임김욱진  시래기 국밥집 앞 지나가다문득 시래깃국 먹던 어린 시절 떠올라고 생각 고대로 데리고식당 문고리 잡아당겼더니 문이 잠겼다브레이크 타임, 3시부터 5시까지장사를 하지 않는다고두 시간이면 무밭 다 갈아엎고도 남는 시간인데그래, 올가을 무도 똥값이고시래깃국 장사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건너나 나나 마찬가지그래도 밥때 놓친 사람들 허기 채우긴 그저 그만인데설마, 시래기가 쓰레기 되어버린 걸까손님은 아무도 없고나 혼자 길바닥 버려진 무청 한 이파리 주워너의 전생은 무, 내생은 시래기그놈의 한 생 물고 늘어진 나는무 한 입 베어 물고시래기 되었다 무 되었다한 시간 남짓 온갖 궁상떨면서기다렸다, 나도 무도 아닌 나무 의자에 앉아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무의 자를 만나고 있었다시래기는 오간 데 없고무..

♧...발표작 2024.11.07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김욱진  삼식이가 되어버린 요즘 밥값 한답시고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우르르 한꺼번에 다 몰려온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숟가락 젓가락서로 뒤엉켜 아우성치다틈새로 물이 스며들면저거들끼리 물살을 밀고 당기면서달그락달그락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아무 생각 없이, 내 손 가락이 물레 잣는 노랫가락처럼 휘어고개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숟가락 젓가락에 먼저 가닿을 때도 있다그럴 때마다평생 설거지하고 살아온 집사람잔소리 한 바가지싱크대로 확 쏟아 붓는다대접받는 그릇이 먼저지 밥하고 국 없는 밥상이 어디 있냐고금세 나는, 어물쩍 이 접시 저 접시 눈치 보며잔소리까지 몽땅 받아먹은밥그릇 국그릇 설거지하고, 맨 나중에속 새카맣게 탄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2023 도동문학 연간집)

♧...발표작 2024.11.07

선사 법문-이만翁

선사 법문-이만翁김욱진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 가면2만 년 전 살던 고인돌사람 한 분 모로 누워계신다얼마 전 코로나 예방주사도 맞고입마개도 하고 있더니만오늘은 대한민국 0.72 라는 명패 달고눈물을 흘리고 있네헐, 저게 뭐지0.72가 이름일 리는 만무하고시력이 0.72란 말인가그럼, 안경을 씌워뒀을 텐데 것도 아니고차 쌩쌩 달리는 길섶에서환생한 고인돌이 눈물까지 보이고아, 이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터언저리 선사시대 사람들 만나 여쭤봐야지죽음이 살아 숨 쉬는 골목 한 모퉁이무덤 앞에 서있는 돌이 눈에 띈다선돌마다 새겨진 그림, 자는 또 뭐지다짜고짜 팻말에 적힌 자한테 물어보니이 암각화 속엔 다산의 의미가 숨겨져 있었네그래, 맞아요즘 사람들 아이 낳지 않는다는 소식 듣고속 터진 돌사람  대한민국 (합계..

♧...발표작 2024.11.04

산낙지와 하룻밤 / 김욱진

산낙지와 하룻밤 김욱진 나 어릴 적우등상 받아왔다고아버지는 시오리 길 장에 가서장작 한 짐 판 돈으로산낙지 한 마리지겟머리 걸머지고 오셨다그날 저녁그 녀석을 산 채로 듬성듬성 썰어접시 위에다 올려놓으니낙지 수십 마리가 꼬물꼬물거렸다난생처음 바다를 떠나온 낙지는참, 어리둥절했겠다바다에 사는 줄도 모르고 산낙지는 정신없이 참, 기름장을 찍어 먹었다미끌미끌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멀미를 했다낙지는 내 입안이 갯벌인 줄 알고천장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목구멍 속으로 차츰차츰 기어들어 갔다낯선 숙소에서밤새 구불텅구불텅 온몸을 뒤척이다새벽녘 나랑 곤히 잠들었다 (2024 텃밭시학 연간집)

♧...발표작 2024.10.22

엄니처럼 / 김욱진

엄니처럼김욱진 앉았다 일어서니 빙 둘렸다방전이 된 건지유효 기간이 다 되어 가는 건지겨우 119 불러 병원 갔다다짜고짜 빈혈 검사해보자며피 한 대롱 뽑고간수치는 괜찮은데, 의사 선생 고개 갸우뚱갸우뚱입이 자주 마르고 체중이 좀 줄었습니다그럼, 정밀 당뇨 검사도 해봐야 된다며또 피 한 대롱 뽑고혹, 숨이 차다거나 몸이 가렵지는 않습니까이참에 콩팥 검사해보는 게 좋겠어요그러면서, 또 피 한 대롱 뽑고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피 한 사발 마셔도 시원찮을 판에피 세 대롱 야금야금 빼앗기고 나니나도 모르게암울한 세포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거 같고허수아비가 되어버린 기분도 들고이러다 진짜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이게 다 유전이라니, 얼마나 다행인지핏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무의 유전자 정보가 깨알같이 드..

♧...발표작 2024.10.22

자격증 시대 / 김욱진

자격증 시대김욱진 요즘 자격증 하나로는 왠지 불안하다눈앞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고부터나는 온종일 칭얼대는 그 녀석들 밥 먹이고뒤치다꺼리하다 보면하루해가 훌쩍 다 지나간다그러다 밤이 되면아무 일도 없었듯 곤히 잠들어버리는 녀석들개중엔 오줌 마렵다고 깨서 보채는 녀석도 있고엎치락뒤치락 잠꼬대하듯밤새 돌아다니는 녀석도 있다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고젖먹이 달래듯 살살 달래다 보면난데없이 귓속 어느 한 모퉁이서 매미들 요란하게 울어댄다벙어리 냉가슴 앓듯 맴맴 같이 따라 울다새벽녘에야 겨우 잠재우고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 보면저 멀리 귀뚜리 소리도 들린다밤낮이 이래 시끄러워서야, 우째 살겠노 철없이 울어대는 요 녀석들 죽 데리고담날 아침 용타는 안이비인후과 찾아갔더니비문증에다 이명증까지 노치원 자격증은 이게 기본이라 ..

♧...발표작 2024.10.22

운주사 와불 / 김욱진

운주사 와불김욱진 천불 천탑 불사 중 쓰러져 누워계신다고, 천년을물어물어 천불산 운주사 찾아갔다무슨 꾀병 부리실 리는 만무하고얼마나 속 천불이 나셨을까산새들 간간이 날아와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있었다어떤 새는 천수경 외듯 중얼중얼어느 새는 부처 입에다 공양 올리듯물똥 찔끔 싸고 어느새 훨훨와불이시여, 이 불사 어느 천년에 다 하시려고이렇게 누워만 계십니까허허,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자네가 누워 있다니 오늘은 누워 있는 그 자리서 천불 천탑 불사해야겠네조금 전 자네 입에서 뱉은 천년이 내 귀퉁이로천둥번개처럼 지나갔지너와 나 둘 아닌 그 자리누구의 천년이 머물다 갔는가와, 불이다한 소식 전해들은 사람들 허겁지겁 찾아와어떤 이는 텅 빈 손바닥에 천불이란 천불 다 내려놓고또 어떤 이는 머리맡..

♧...발표작 2024.10.22

장마를 장미라 부를 때 / 김욱진

장마를 장미라 부를 때김욱진 지붕에서 비가 샜습니다한밤중 쏟아지는 빗소리에 말도 샜습니다, 할매는그놈의 장미, 참 오래도 간다 하시면서그냥 방바닥에다고무다라이 세숫대야 냄비 줄줄이 받쳐놓고밤새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한가득씩 받았습니다물 부자 된 담날 아침그 물로 나는 세수하고 머리 감고엄마는 설거지하고 빨래도 하고할매는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소지 한 장 불 사르며손 귀한 우리 집 자손 번성하고식구들 그저 몸이나 성케 해달라고천지사방 삼신 할매한테 빌었습니다그 기도발이 먹혔던지시집간 막내 고모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고풍으로 쓰러진 할배는 죽을 고비 넘기시고포도알처럼 송알송알 맺힌 물방울 천장 스며들어 장밋빛으로 불그스레 물들었습니다장마가 그려놓은 장미 한 송이내 가슴 속 천장엔 아직도어릴..

♧...발표작 2024.10.22

늦가을 시화전 / 김욱진

늦가을 시화전김욱진 얼마 전, 엄니 살던 흙집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틈틈이 주워 모은 기왓장에다 연꽃 그림 그리고 시 몇 구절 적어 마당 구석구석 세워뒀다 이게, 시처럼 그림처럼 보였던지 오가는 개미들은 줄지어 서서 한참 쳐다보다 가고 동네 길고양이들은 재능 기부하듯 야옹야옹 자작시 낭송도 하고, 그 소문 듣고 찾아온 벌 나비는 시향에 흠뻑 젖어 훨훨 춤도 추고 시화가 뭔 줄도 모르는 거미들은 처마 밑 허공에다 습작하듯 그림 같은 시 줄줄 걸쳐놓고 이 줄 저 줄 밑줄 그어가며 붓질하느라 분주하고 어디선가 귀티 나는 새도 한 마리 날아와 훗훗, 하며 시를 읊었다   비슬산 문필봉이 나를 내려다보며 그냥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쓴 것 그게 다 그림이고 시라는 말씀 한마디 후투티처럼 훅, 던지고 갔다  (202..

♧...발표작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