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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 권정생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권정생 ​도모꼬는 아홉 살나는 여덟 살이학년인 도모꼬가일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시집가면 되겠네 했다​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도모꼬가 말했다.정생이는 못생겨서 싫어요!​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도모꼬 생각만 나면이가 갈린다.

♧...참한詩 2025.01.20

은행나무 / 박형권

은행나무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낙엽 한 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달라 해야겠다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그러니까 젠장,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밥 사먹어라

♧...참한詩 2025.01.09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천양희

그 사람의 손을 보면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그 사람의 손을 보면구두 끝을 보면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그 사람의 손을 보면창문 끝을 보면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그 사람의 손을 보면길 끝을 보면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그 사람의 손을 보면마음 끝을 보면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참한詩 2024.12.29

언젠가는 / 한용운

언젠가는한용운  ​언젠가... 말 못할 때가 옵니다. 따스한 말 많이 하세요. ​​언젠가... 듣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값진 사연 값진 지식 많이 보시고 많이 들으세요.​​​언젠가... 웃지 못할 때가 옵니다. 웃고 또 웃고 활짝 많이 웃으세요. ​언젠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가고픈 곳 어디든지 가세요. ​​언젠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옵니다. 좋은 사람 많이 사귀고 만나세요. ​언젠가...감격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마음을 숨기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고 사세요.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참한詩 2024.12.02

브레이크 타임

브레이크 타임김욱진  시래기 국밥집 앞 지나가다문득 시래깃국 먹던 어린 시절 떠올라고 생각 고대로 데리고식당 문고리 잡아당겼더니 문이 잠겼다브레이크 타임, 3시부터 5시까지장사를 하지 않는다고두 시간이면 무밭 다 갈아엎고도 남는 시간인데그래, 올가을 무도 똥값이고시래깃국 장사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건너나 나나 마찬가지그래도 밥때 놓친 사람들 허기 채우긴 그저 그만인데설마, 시래기가 쓰레기 되어버린 걸까손님은 아무도 없고나 혼자 길바닥 버려진 무청 한 이파리 주워너의 전생은 무, 내생은 시래기그놈의 한 생 물고 늘어진 나는무 한 입 베어 물고시래기 되었다 무 되었다한 시간 남짓 온갖 궁상떨면서기다렸다, 나도 무도 아닌 나무 의자에 앉아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무의 자를 만나고 있었다시래기는 오간 데 없고무..

♧...발표작 2024.11.07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김욱진  삼식이가 되어버린 요즘 밥값 한답시고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우르르 한꺼번에 다 몰려온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숟가락 젓가락서로 뒤엉켜 아우성치다틈새로 물이 스며들면저거들끼리 물살을 밀고 당기면서달그락달그락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아무 생각 없이, 내 손 가락이 물레 잣는 노랫가락처럼 휘어고개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숟가락 젓가락에 먼저 가닿을 때도 있다그럴 때마다평생 설거지하고 살아온 집사람잔소리 한 바가지싱크대로 확 쏟아 붓는다대접받는 그릇이 먼저지 밥하고 국 없는 밥상이 어디 있냐고금세 나는, 어물쩍 이 접시 저 접시 눈치 보며잔소리까지 몽땅 받아먹은밥그릇 국그릇 설거지하고, 맨 나중에속 새카맣게 탄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2023 도동문학 연간집)

♧...발표작 2024.11.07

선사 법문-이만翁

선사 법문-이만翁김욱진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 가면2만 년 전 살던 고인돌사람 한 분 모로 누워계신다얼마 전 코로나 예방주사도 맞고입마개도 하고 있더니만오늘은 대한민국 0.72 라는 명패 달고눈물을 흘리고 있네헐, 저게 뭐지0.72가 이름일 리는 만무하고시력이 0.72란 말인가그럼, 안경을 씌워뒀을 텐데 것도 아니고차 쌩쌩 달리는 길섶에서환생한 고인돌이 눈물까지 보이고아, 이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터언저리 선사시대 사람들 만나 여쭤봐야지죽음이 살아 숨 쉬는 골목 한 모퉁이무덤 앞에 서있는 돌이 눈에 띈다선돌마다 새겨진 그림, 자는 또 뭐지다짜고짜 팻말에 적힌 자한테 물어보니이 암각화 속엔 다산의 의미가 숨겨져 있었네그래, 맞아요즘 사람들 아이 낳지 않는다는 소식 듣고속 터진 돌사람  대한민국 (합계..

♧...발표작 2024.11.04

산낙지와 하룻밤 / 김욱진

산낙지와 하룻밤 김욱진 나 어릴 적우등상 받아왔다고아버지는 시오리 길 장에 가서장작 한 짐 판 돈으로산낙지 한 마리지겟머리 걸머지고 오셨다그날 저녁그 녀석을 산 채로 듬성듬성 썰어접시 위에다 올려놓으니낙지 수십 마리가 꼬물꼬물거렸다난생처음 바다를 떠나온 낙지는참, 어리둥절했겠다바다에 사는 줄도 모르고 산낙지는 정신없이 참, 기름장을 찍어 먹었다미끌미끌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멀미를 했다낙지는 내 입안이 갯벌인 줄 알고천장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목구멍 속으로 차츰차츰 기어들어 갔다낯선 숙소에서밤새 구불텅구불텅 온몸을 뒤척이다새벽녘 나랑 곤히 잠들었다 (2024 텃밭시학 연간집)

♧...발표작 2024.10.22

엄니처럼 / 김욱진

엄니처럼김욱진 앉았다 일어서니 빙 둘렸다방전이 된 건지유효 기간이 다 되어 가는 건지겨우 119 불러 병원 갔다다짜고짜 빈혈 검사해보자며피 한 대롱 뽑고간수치는 괜찮은데, 의사 선생 고개 갸우뚱갸우뚱입이 자주 마르고 체중이 좀 줄었습니다그럼, 정밀 당뇨 검사도 해봐야 된다며또 피 한 대롱 뽑고혹, 숨이 차다거나 몸이 가렵지는 않습니까이참에 콩팥 검사해보는 게 좋겠어요그러면서, 또 피 한 대롱 뽑고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피 한 사발 마셔도 시원찮을 판에피 세 대롱 야금야금 빼앗기고 나니나도 모르게암울한 세포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거 같고허수아비가 되어버린 기분도 들고이러다 진짜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이게 다 유전이라니, 얼마나 다행인지핏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무의 유전자 정보가 깨알같이 드..

♧...발표작 2024.10.22

자격증 시대 / 김욱진

자격증 시대김욱진 요즘 자격증 하나로는 왠지 불안하다눈앞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고부터나는 온종일 칭얼대는 그 녀석들 밥 먹이고뒤치다꺼리하다 보면하루해가 훌쩍 다 지나간다그러다 밤이 되면아무 일도 없었듯 곤히 잠들어버리는 녀석들개중엔 오줌 마렵다고 깨서 보채는 녀석도 있고엎치락뒤치락 잠꼬대하듯밤새 돌아다니는 녀석도 있다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고젖먹이 달래듯 살살 달래다 보면난데없이 귓속 어느 한 모퉁이서 매미들 요란하게 울어댄다벙어리 냉가슴 앓듯 맴맴 같이 따라 울다새벽녘에야 겨우 잠재우고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 보면저 멀리 귀뚜리 소리도 들린다밤낮이 이래 시끄러워서야, 우째 살겠노 철없이 울어대는 요 녀석들 죽 데리고담날 아침 용타는 안이비인후과 찾아갔더니비문증에다 이명증까지 노치원 자격증은 이게 기본이라 ..

♧...발표작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