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최영미 괴물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 ♧...참한詩 2018.03.25
폭설/오탁번 폭설(暴雪) 폭설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 ♧...참한詩 2018.03.17
세뱃돈 대신 세뱃돈 대신 섣달그믐밤 엎치락뒤치락하다 내 블로그 신작시 방에 들러 뒤적뒤적해보니 올 한 해 꼬박 빚은 시만 육십여 편 남짓 아파트 평수 불린 듯 배가 부르다 편당 고료 3만원을 받았다 쳐도, 어림잡아 180만원 그 모갯돈만 있으면 지금쯤 세뱃돈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한편, 잠자리.. ♧...발표작 2018.02.21
스스로 그러하게/김해자 스스로 그러하게 김해자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둥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 온몸 푸른 심줄 투성이 저것들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 ♧...참한詩 2018.02.19
꽃은 자전거를 타고/최문자 꽃은 자전거를 타고 최문자 그녀가 죽던 날 꽃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녀의 남자가 입원실 현관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막 아네모네 꽃을 내리려고 할 때 그녀의 심장은 뚝 멎었다 꽃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영안실 근처로 갔다 죽을 자리에서도 타오른다는 아네모네가 놀란 자전거를 타.. ♧...참한詩 2018.02.15
[스크랩] 최영미시인 시모음 최영미 시인 시모음 http://myhome.hanafos.com/~bjinny/index.html (최영미 시인 팬페이지) http://myhome.naver.com/iloveher/ (최영미님의 시읽기) 사는 이유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 ♧...참한詩 2018.02.11
상인일기/김연대 상인일기 김연대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은 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 ♧...참한詩 2018.02.09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조용미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조용미 빈소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 것 같다 며칠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읽지 못할 긴 편지를 쓴 것도 같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천천히 멱목을 덮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길고 따뜻했던 손가락을 느끼며 잡.. ♧...참한詩 2018.02.05
열흘의 色/마경덕 열흘의 色 마경덕 花, 십일 열흘에서 하루를 더하면 꽃이 진다 열흘은 입에 물고 무덤까지 가야하는 말 열하루는 낙화이거나 낙하이거나 추락이거나 기어이 열흘을 꺼내는 건 공들여 짠 비단을 찢는 일 두 손에 핏물이 들지 않고 어찌 마음을 찢을 수 있느냐 그 끝에 늘어진 목을 매고 아.. ♧...참한詩 2018.02.05
겨울 거미/이평화 겨울거미 이평화 새끼거미가 내 방 벽 구석에 있다 휴지를 손바닥에 돌돌 말았는데 창밖에는 서리가 잔뜩 끼어있더라 겨울이라...잡으면 안되겠다 거미도 지가 있을곳이 내방 벽 구석은 아니라는거 안다 날이 추워져 가족끼리 피난가다 혼자 살아남아 들어온거겠지 잠깐 있다 가겠지 평.. ♧...참한詩 201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