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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재산 외 21편 /최서림

시인의 재산 최서림 ​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빈 하늘은 내 것이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새털구름도 내 것이다.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내 것이다. 너무 높아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다 내 것이다. 새도 듣고 바람도 듣고 ​ 천산남로 어떤 종족은 아직도, 땅이나 집을 사고팔 때 문서를 주고받지 않는다. 도장 찍고 카피하고 공증을 받은 문서보다 사람들 사이 약속을 더 믿는다. 돌궐족이 내뱉는 말은 하늘도 듣고 땅도 듣고 새도 듣는다. 낙타풀도 지나가는 바람도 다 듣고 있다. 글자는 종이 위에 적히지만 말은 영혼 속에 깊숙이 새겨진다. 바위에다 매달아 수장시켜버릴 수도 불에다 태워 죽일 수도 없는 말. ​ 세상의 안이면서 밖인 ​ 나의 고향집, 엄마의 몸은 이 세상..

♧...참한詩 2024.01.27

도동측백나무 숲

도동측백나무 숲 속 어지간히 썩었을 거 같다 수백 년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자수성가한 도동측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1호라는 칭호마저 잃어버렸다니 어쩌겠나, 국보 1호 숭례문도 보물 1호 흥인지문도 다 그렇게 되고 말았는 걸 그나저나, 숫자에 불과한 호칭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도동 주인 노릇하고 살아온 측백나무 틈새로 말채나무 쇠물푸레나무 자귀나무 소태나무 층층나무 회화나무 골담초나무 난티나무…… 도통 듣도 보도 못한 타성바지 나무들이 천연스럽게 비집고 들어와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다는 후문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하듯 누군가 잘 되는 꼴 보면 그저 시샘하고 헐뜯는 우리네 세상 어디, 나무들이라고 별반 다르랴 (2023 천연기념물 1호)

♧...발표작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