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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그 바람에 김욱진 은행들이 다 털렸다 졸지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버린 은행들은 길바닥에 나앉았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구린내가 났다 누구 소행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줄도산 당한 은행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바람에 은행 주가는 폭락했고 빚쟁이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짓뭉개듯 은행 짓밟고 지나갔고 바람은 그냥 빚잔치 한 판 속 시원하게 벌인 듯 지나갔다 그 바람에 빚진 늦가을 바람은 큰길가 신호등 언저리 보도블록 위 은행 신용불량자 딱지처럼 딱 붙어있는 일수대출 광고지 직빵 전화번호부터 슬그머니 떼어내고 있었다 (2022 김명배문학상 작품상 수상작)

♧...발표작 2023.11.03

무료급식소

무료급식소 김욱진 수성못 둑을 돌다 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급식소 새우깡 몇 물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 건달 행세하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 꼬리 깡 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식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 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은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발표작 2023.11.03

숯을 굽다 / 사윤수

숯을 굽다 사윤수 ​ ​ 베어낸 굴참나무를 수레에 실어왔다 둥치가 튼실한 걸 보니 하늘을 이고 자랐겠구나 우듬지에 따라온 두 평 반 구름이 높이 떠가고 가지마다 앉았던 새소리가 흩어졌다 ​ 참나무는 빈 몸이 되었다 세월을 자르고 바람을 토막 내고 잔가지와 잎은 불쏘시개로 쓸 테니 버릴 것이 없다 궁핍도 때로는 쓸모 있는 시절인 것을, 너를 구워 나를 익게 하리라 ​ 숯가마를 가득 채운 직립의 참나무에 불을 지핀다 세월이 타고 고뇌가 타고 나무의 기억들이 춤춘다 이레 여드레 꺼지지 않는 불꽃 속에서 나무는 죽고 또 죽어야 숯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므로 나는 오로지 맑고 희거나 검게 빛나는 덩이를 얻고자 했으므로 ​ 한 때 숯을 굽는 일은 나의 실학이 되었다 숯이 된 굴참나무는 탈 때 연기가 나지 않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