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 / 나희덕
정직한 사람 나희덕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가 묵처럼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매일 다른 얼굴이 주어지는 아침, 오늘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거짓말은 굳어갈수록 독기를 잃은 뱀의 말에 가까워진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거짓말과 비밀의 차이도 알고 있다 깊은 슬픔이 어떻게 거짓말 없이 전달될 수 있을까 연민보다는 차라리 거짓말이 낫고 말의 순도보다는 말의 두께가 중요한 순간이 있으니 독기를 잃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도 있으니 누구도 그것을 거짓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확정된 진실조차 없기에 정직함이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정직함에 대한 부정직한 이해만이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