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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살기 / 김윤현

나무로 살기 김윤현 음지 양지 따라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않기 가지와 잎이 다르게 생겼다고 남을 내치지 않기 주어 없는 문장처럼 가볍게 호흡하기 매일 매일의 변화를 눈에 띄지 않게 이어가기 바람이 불면 때를 놓치지 않고 스트레칭하기 구름이 다가오면 지나갈 때까지 모른척하기 아무리 알아주는 이 없어도 뿌리는 드러내지 않기 어떤 일이 있어도 푸르름은 유지하기

♧...참한詩 2023.09.10

정직한 사람 / 나희덕

정직한 사람 ​ ​나희덕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가 묵처럼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매일 다른 얼굴이 주어지는 아침, 오늘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거짓말은 굳어갈수록 독기를 잃은 뱀의 말에 가까워진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거짓말과 비밀의 차이도 알고 있다 깊은 슬픔이 어떻게 거짓말 없이 전달될 수 있을까 연민보다는 차라리 거짓말이 낫고 말의 순도보다는 말의 두께가 중요한 순간이 있으니 독기를 잃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도 있으니 누구도 그것을 거짓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확정된 진실조차 없기에 정직함이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정직함에 대한 부정직한 이해만이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낼 뿐 ..

♧...참한詩 2023.09.03

가문비나무 / 안상학

가문비나무 안상학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가도 몸이 따라 아프면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하게 하려면 겨울이 길어야겠습니다 고통을 새기려면 거센 바람이 오래 흔들려야 했습니다 슬픔을 아로새기려면 거친 눈보라가 제격이겠습니다 슬픔의 소리가 노랫말을 얻을 때까지 고통의 소리가 선율을 얻을 때까지 마음에 지지 않으려면 몸에 울음소리를 새겨야겠습니다 몸에 지지 않으려면 마음에 신음소리를 새겨야겠습니다 길고 긴 밤의 시간을 건너고 건너서 수없이 많은 겨울의 시간을 지나고 지나서 거짓말같이 봄이 오고 믿을 수 없는 여름이 오고 도둑같이, 다시 겨울을 부르는 가을이 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내던지겠습니다 누군가 내 몸을 잘라서 고통을 보자 하면 선율을 내놓겠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쪼아서 슬픔을 보자 하면 노래를 ..

♧...참한詩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