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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힘은 내일을 비추는 오늘 - 순암을 읽다 / 김은숙

나의 힘은 내일을 비추는 오늘-순암을 읽다 ​김은숙 ​ 세상은 늘 원본이자 진본이라서 훗날이 반드시 고증해 온다 ​ 남는 건 기록이고 기록은 길이라서 정사(政事)를 버리고 정사(正史)만을 저록한다 ​ 사람의 심연을 다스리는 성현의 도는 저택과 같다 공리공론에 빠지지 않으려 선입견 버리고 붓을 드는 순간 갓을 고쳐 쓴 아집은 돌담 밖에서도 기웃거리지 못한다 ​ 실체가 끊어지면 정처 없이 걷고 실체가 보이면 한 달 내내 서고에 틀어박혀 혜안을 넓힌다 ​ 스무 권을 완성하는 동안 벼루는 움푹 패고 열 번째로 닳은 붓이 편년을 헤아린다 ​ 그러니 역사를 쓴 것은 내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집필한 것이다 ​ 잠시 흩어진 중심을 하나로 모아 머리말을 적지 않고 퇴고로 쓴 시간만큼 거슬러간다 ​ 밖을 보니 문득 새벽이..

한두레 마을 염소 이야기

한두레 마을 염소 이야기 김욱진 초등학교 때 나는 염소 동아리 반장을 한 적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근로 장학생인 셈이다 가정 형편 어려운 나는 장학금 턱으로 어린 암염소 한 마리를 받았다 소 키우는 집이 엄청 부러웠던 그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나는 염소 고삐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염소가 자라 이듬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 중 수놈은 팔아 중학교 입학금 마련하고 암놈은 건넛집 할머니랑 사는 여자아이에게 분양했다 희망 사다리 오른 그 아이도 어미 염소 되도록 길러 새끼 낳으면 릴레이식으로 건네주는 염소 동아리 염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 낳고 낳아 육십여 호 되는 한두레 마을은 어느새 염소 한 마리 없는 집이 없었다 뿔 맞대고 티격태격하던 이웃들 염소 교배시..

♧...발표작 2023.10.25

노숙 / 김사인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참한詩 2023.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