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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슬픔 / 김휼

퇴행성 슬픔 김 휼 바람이 멈추면 내 슬픔은 구체적이 됩니다 봄 흙에 젖살이 내릴 즈음 연둣빛 말문을 텄지요 태생이 곰살맞아 무성한 소문을 달고 살아요 잘 여믄 눈빛으로 성장기는 푸르게 빛났습니다 귀가 깊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어느 날, 번쩍, 순간을 긋고 가는 일성에 난청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며 살았습니다 해야 할 일만 하고, 가야 할 곳만 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일에는 침묵하며 지냈습니다 참는게 버릇이 되어버린 직립은 퇴행성 슬픔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구부러지지 않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으며 뼈마디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손가락 뼈들이 뒤틀리고 있지만 경탄을 잃지 않으려 식물성 웃음만 섭취해 보는데 오백 년이라는 치명적 무게를..

♧...참한詩 2023.09.03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동순

홍범도 장군의 절규 이동순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 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 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함부..

♧...참한詩 20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