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이육사 교목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참한詩 2011.04.13
폭포/김수영 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 ♧...참한詩 2011.04.13
봄이 오는 길목/박재삼 봄이 오는 길목 박재삼 봄날 삼천포 앞바다는 온통 아지랑이에 묻혀 노곤한 가운데 천지가 새로 살아나는 기운을 함께 얻는 양 쟁쟁쟁 일렁이면서 빛나게 반짝이고 있었네 바다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보면 대방(大芳) 끝의 땅에서는 같이 호응하여 오래 동면 속에 갇혔던 것을 하나씩 하나씩.. ♧...참한詩 2011.04.12
빗방울 화석/황동규 빗방울 화석 황동규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흩뿌린 눈물 자국? 감춘 눈물 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 ♧...참한詩 2011.04.08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이해인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 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의 화.. ♧...참한詩 2011.04.01
봄/이성부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 ♧...참한詩 2011.03.25
어떤 적막/정현종 어떤 적막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참한詩 2011.03.20
[스크랩] 일본에의 예의 / 고 은 일본에의 예의 / 고 은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 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닌 속수무책으로 실시간의 화면을 본다 몇 천일지 몇 만일지 모를 일상의 착한 목숨들 이제 살아오지 못한다 어머니도 아기도 할아버지도 .. ♧...참한詩 2011.03.17
십자가/윤동주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 ♧...참한詩 2011.03.10
담쟁이/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참한詩 201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