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워라, 꽃!/이안 치워라, 꽃! 이안 식전 산책 마치고 돌아오다가 칡잎과 찔레 가지에 친 거미줄을 보았는데요 그게 참 예술입디다 들고 있던 칡꽃 하나 아나 받아라, 향(香)이 죽인다 던져주었더니만 칡잎 뒤에 숨어 있던 쥔 양반 조르륵 내려와 보곤 다짜고짜 이런 시벌헐, 시벌헐 둘레를 단박에 오려내어 톡! 떨어뜨리.. ♧...참한詩 2011.05.19
이상하다/최종득 이상하다 최종득 외할머니가 고사리와 두릅을 엄마한테 슬며시 건넵니다. "가서 나물 해 먹어라. 조금이라서 미안타." "만날 다리 아프다면서 산에는 뭐하러 가요.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요." 늘 주면서도 외할머니는 미안해하고 늘 받으면서도 엄마는 큰소리칩니다. ♧...참한詩 2011.05.19
만약/함기석 만약 함기석 만약 지상의 눈송이가 모두 벌레로 변한다면 만약 도시 상공의 구름이 모두 바윗덩어리로 변한다면 만약 너의 혀가 끝없이 늘어나 두 줄기 레일이 된다면 만약 너의 방이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의 귓속이라면 만약 네가 걸을 때 빌딩들이 나무들이 둥둥 떠오른다면 만약 네 시의 글자들이 .. ♧...참한詩 2011.05.19
나와 나 사이/문정희 나와 나 사이 문정희 나와 나 사이 시를 버리고 흐르는 구름을 끼워 놓는다 눈부신 양들의 행렬을 시는 때로 욕망의 무게를 지니지만 구름은 만개한 공허 흩어지고 말면 그뿐인 나와 나 사이 날카로운 터럭을 밀어 버린다 앵무새 능구렁이 삼류 배우를 밀어 버린다 이끼가 낄 때까지 입을 열지 않는 검.. ♧...참한詩 2011.05.19
그 놋숟가락/최두석 그 놋숟가락 최두석 그 놋숟가락 잊을 수 없네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던 짚수세미로 기왓가루 문질러 닦아 얼굴도 얼비치던 놋숟가락 사촌누님 시집가기 전 마지막 생일날 갓 벙근 꽃봉오리 같던 단짝친구들 부르고 내가 좋아하던 금례 누님도 왔지 그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 누님들과 함께 뒷산에 .. ♧...참한詩 2011.05.19
할머니 입/윤동재 할머니 입 윤동재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 넣어 주실 때마다 할머니도 아-- 아-- 입을 크게 벌리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릴 때마다 할머니도 내 동생을.. ♧...참한詩 2011.05.19
사방과 그림자/오규원 사방과 그림자 오규원 장미를 땅에 심었다 순간 장미를 가운데 두고 사방이 생겼다 그 사방으로 길이 오고 숨긴 물을 몸 밖으로 내놓은 흙 위로 물보다 진한 그들의 그림자가 덮쳤다 그림자는 그러나 길이 오는 사방을 지우지는 않았다 ♧...참한詩 2011.05.19
마침표를 뽑다/이덕규 마침표를 뽑다 이덕규 살아 있는 문장 끝에 박힌 마침표처럼 흔들거리는 개말뚝을 다시 고쳐 박자고 무심코 쑥 뽑았는데, 아뿔싸 잡을 새도 없이 어떤 넘치는 힘이 무거운 쇠사슬을 끌며 멀리 동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쾌한 소리를 듣는다 일생을 단 한 줄로 요약한 단문 끝에 말뚝처럼 박힌 뒷산 무.. ♧...참한詩 2011.05.19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우대식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 우대식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직선의 거리를 넘어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휘돌아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왔거늘 노을 앞에서는 한없이 빛나다가 잦아드는 강물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는.. ♧...참한詩 2011.05.19
손에 강 같은 평화2/장경린 손에 강 같은 평화2 장경린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안경알을 깼다 항암제를 투약하면서도 도수를 높여가며 집착하던 안경이었다 점점 흐려지는 세상을 그저 그러려니 밀쳐두고 살았다면 암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아쉬워하면서 깨진 안경알을 치우다가 손을 베었다 스스로 불러들인 암과 타협해.. ♧...참한詩 2011.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