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송찬호 모자 송찬호 난 어떤 밀고자를 알고 있다 저기 그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머리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귓속으로 한 움큼 동전이 쏟아진다 자, 보세요 얼마나 잘 익었는지…… 그러나 난 아쉽게도 이 빵을 모자로 뒤집어야 한다 난 모자 앞에서 늘 망설이는 편이다 아름다운 여자 .. ♧...참한詩 2011.06.21
뚱뚱한 여자/김기택 뚱뚱한 여자 김기택 눈을 떠보니 어느 작고 어둡고 뚱뚱한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뒷덜미에서 철커덕,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너무 크고 무거웠으므로 끊임없이 마음을 낮게 구부려야 했다. 창문을 찾아 기웃거릴 때마다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벽도 따라 움직여서 어디가 바깥인지 알 수가.. ♧...참한詩 2011.06.21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안도현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 안도현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 어흥, 하고 입을 크게 벌리면 얼마나 좋을까? 토끼 이빨이 쑥쑥 자라나겠지 토끼 꼬리는 쑥쑥 길어질 거야 그때 호랑이 귀가 길쭉해지고 호랑이 꼬리가 짤막해지고 호랑이 발톱이 말랑말랑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토끼는 토끼여서 호랑이를 해치지 .. ♧...참한詩 2011.06.21
마중물/송재학 마중물 송재학 실가지에 살짝 얹힌 직박구리 무게를 으능나무 모든 잎들이 하늘거리며 떠받들듯이 펌프질 전에 펌프에 붓는 마중물로 내이內耳의 비알에 박음질하듯 우레가 새겨졌다 마중물은 보통 한 바가지 정도 그건 지하수의 기갈이었지만 물의 힘줄로 연결되었으니 물에게도 간절한 육체가 있.. ♧...참한詩 2011.06.21
불면증/예현연 불면증 예현연 나는 난폭한 어둠을 알아 ㅡ 어둠이 때때로 나를 밟고 가나보다 불을 켜 보면 나도 모르게 멍이 들어 있다 흩어진 거울 조각조각마다 나를 노려보는 어둠의 충혈된 눈동자 나는 인간의 목소리가 싫어 어둠은 온종일 내 머릿속에서 노래를 불러대지 이를 악물고 귀를 막아도 새어나오는 .. ♧...참한詩 2011.06.21
강의 이마를 짚어주는 저녁 어스름/배한봉 강의 이마를 짚어주는 저녁 어스름 배한봉 물고기에게 물은 살과 피, 아니 먼 조상들,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연인, 아니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달을 품고 있는 우주 나는 한 번도 물속에서 살아본 적 없다 물고기만큼 물을 사랑하고, 물과 키스하며 안과 밖이 맑은 물로 채워진 세계가 되어본 적 없다 .. ♧...참한詩 2011.06.21
둥근 세모꼴 외 2편/유안진 둥근 세모꼴 (외 2편) 유안진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켄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 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 ♧...참한詩 2011.06.21
포옹/박정남 포옹 박정남 포옹을 가장 잘 하는 꽃은 연꽃입니다 연꽃이 저희 꽃잎들을 꼭 안고 피어 있습니다 아침 햇살에 분홍 꽃잎들을 열었다가 두 시가 되어 이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스스로를 포옹함으로서 고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스스로 개폐하는 포옹의 힘을 잃을 때 연꽃들은 스르르 깍지 낀 손을 풀고 .. ♧...참한詩 2011.06.21
기침/류인서 기침 류인서 네 목뼈에 걸린 아담의 사과, 마른 그 사과 씨에서 싹이 트는 밤 바구니에 남은 사과의 시든 땅에도 콜록콜록 파란 잎 돋고 사과꽃 별이 뜨는 밤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비틀린 허공으로 거꾸로 매달린 강물이 흘러 마을에서는 벗긴 사과껍질 같은 탯줄을 목에 건 아기가 태어나는 밤 젊은.. ♧...참한詩 2011.06.15
고향의 천정/이성선 고향의 천정 이성선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고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고 계셨습니다. 늦여름의 하늘빛이 메밀꽃 위에 빛나고 메밀꽃 사이사이로 할머니는 가끔 나와 바람의 장난을 살피시었습니다. 해마다 밭둑에서 자라고 아주 커서도 덜 자란 나는 늘 그러했습니다만 할머니는 저승으로 .. ♧...참한詩 2011.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