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숨은 산/이성선 숨은 산 ㅡ山詩.33 이 성 선 땅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를 주워들다가 그 밑에 작게 고인 물속 산이 숨어 있는 모습 보았다 낙엽 속에 숨은 산 잎사귀 하나가 우주 전체를 가렸구나 밥 세끼 먹고도 ㅡ山詩.16 이 성 선 밥 세 끼 먹고도 우리는 왜 이리 할 일이 많은가 산에 사는 것들은 제 나무 열매 멀리 던.. ♧...참한詩 2011.10.15
어머니의 그륵/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 ♧...참한詩 2011.10.15
깔깔거리는 꽃밭/김륭 깔깔거리는 꽃밭 김륭 꽃도 암놈이 있고 수놈이 있어? 노랗게 개나리 핀 봄날 동생이 물었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살금살금 학교로 갔다 꽃밭으로 갔다 잘봐, 내가 오줌을 누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는 꽃은 암놈이야 그럼 수놈은? 너처럼 깔깔거리는 꽃이야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 ♧...참한詩 2011.09.11
도다리를 먹으며/김광규 도다리를 먹으며 김광규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 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 ♧...참한詩 2011.09.03
술래잡기/김종삼 술래잡기 김종삼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 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가리개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참한詩 2011.09.01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이성복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이성복 어느 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재벌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된다 어느 날 갑자기 새는 갓낳은 제 새끼를 쪼아먹고 카바레에서 춤추던 유부녀들 얼굴 가린 채 줄줄이 끌려.. ♧...참한詩 2011.08.29
통도사 경봉 큰스님 법문 부채 봄날에 부채를 부치면 온갖 꽃 곱게 피고 여름에 부채를 부치면 구름이 일고 비가 오며 가을에 부채를 부치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부채를 부치면 서리와 눈이 내린다 ♧...참한詩 2011.08.28
아버지의 나이/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 ♧...참한詩 2011.08.25
석가모니 부처님 오도송 석가모니 부처님 오도송 나는 이 집을 지은 자를 찾아 여러 생을 휘달려 왔지만 모두 고통이었네. 집을 지은 이여, 이제는 그대를 찾았네 그대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자제들은 모두 부서져 마룻대는 부서졌고, 서까래는 주저앉아 마음은 업의 이룸을 멈추고 갈애는 부서져 버렸네. ♧...참한詩 2011.08.24
투병/문인수 투병 문인수 기생목 겨우살이 저 여러 덩어리가 참나무를 뒤덮었다. 생생한 연둣빛 덩어리가 그렇게 나뭇가지마다 여기 저기 터 잡고 있는데, 나무에게는 큰 탈이겠다. 말하자면 악성 종양 같은 것이 공중에 쏘아 올린 불꽃놀이 섬광처럼 축포처럼 우듬지 꼭대기까지 펑 펑 펑 터지고 있다. 나무의 비.. ♧...참한詩 201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