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연못/정호승 밤의 연못 정호승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의 창 너머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들이 내 뒤로 따른다 꽃잎을 꼭 다.. ♧...참한詩 2012.01.07
생일/정호승 생일 정호승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다가 내가 먹던 밥을 개에게 주고 개가 먹던 밥을 내가 핥아 먹는다 식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촛불을 끄고 축하 케이크를 먹다가 내가 먹던 케이크를 고양이에게 주고 고양이가 먹던 생선대가리를 내가 뜯어 먹는다 오늘은 내 생일.. ♧...참한詩 2012.01.07
[스크랩] 돌멩이/정호승 돌멩이 정호승 아침마다 단단한 돌멩이 하나 손에 쥐고 길을 걸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누가 또 고요히 말없이 소리치면 내가 가장 먼저 힘껏 돌을 던지려고 늘 돌멩이 하나 손에 꽉 쥐고 길을 걸었다 어느날 돌멩이가 멀리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나를 향해 날.. ♧...참한詩 2012.01.07
장 노인 장 보기/김종길 장 노인 장 보기 김종길 "오늘 장에는 뭣이 제일 헐터노?" 꽃물 다 터지는데 어쩌면 좋아! 앞집 장 노인 쌀 한 가마 싣고 읍내 장엘 갔겄다. 난장에서 쌀 한 입 내고 젊잖게 신발가게에 들어섰겄다. 집 나설 때 손주놈이 연필로 꾹꾹 눌러 그려준 그 상표를 요리 대보고 조리 대보고 .. ♧...참한詩 2011.12.22
대머리촌/유안진 대머리촌 유안진 전교생이 알머리로 등교하자 놀란 선생님들이 물었다 한 친구의 암투병을 돕자고, 1년 동안 모두 머리를 밀고 다니기로 어린이회에서 결정했다고 대답했다 감동한 나머지 남녀노소의 모든 선생님들도 머리를 밀고 가르쳤다 청소담당 관리담당 아주머니 아저씨.. ♧...참한詩 2011.12.20
우리들의 귀로/김혜숙 우리들의 귀로 김혜숙 속눈썹 위에 내려앉은 먼지의 무게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눈 감고 실려 가는 입석 버스 촉수 낮은 불빛에 여윈 볼을 드러내고 부끄러워 빈손은 모두 다 주머니에 감추고 끓어오르는 시장기에 차멀미를 하면서, 차멀리를 하면서 입을 막고 입을 .. ♧...참한詩 2011.12.16
사평역에서/곽재구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 ♧...참한詩 2011.12.16
가난의 골목에서는/박재삼 가난의 골목에서는 박재삼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 ♧...참한詩 2011.12.16
상춘곡/정극인 상춘곡 정극인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술잔 세어 가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 문득 불어 푸른 물 건너오니, 맑은 향기 잔에 떨어지고, 붉은 꽃잎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술집에 술이 있는지 .. ♧...참한詩 2011.12.16
들국/김용택 들국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 ♧...참한詩 201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