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시간/신용목 타자의 시간 신용목 그곳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 그리고 봄에 대한 의심 그곳에 별이 빛난다는 소식 그리고 밤에 대한 의심 당신의 소식은 늘 당신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앞서 있는 나의 의심처럼 나는 당신 소식을 봄밤에 들었다 그곳에서 귀는 뜨거울 때마다 붉어지는 장미의 한 잎이라 .. ♧...참한詩 2013.05.09
[스크랩] 어떤 출생/ 나희덕 어떤 출생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 ♧...참한詩 2013.04.21
[스크랩] 옻나무/정병근 옻나무 정병근 여차하면 가리라 옷깃만 스쳐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너에게 확 옮겨 붙으리라 옯겨 붙어서 한 열흘쯤 두들두들 앓으리라 살이 뒤집어지고 진물이 뚝뚝 흐르도록 앓다가 씻은 듯이 나으리라 네 몸 속의 피톨이란 피톨은 모조리 불러내리라 불러내어 추궁하리라 나.. ♧...참한詩 2013.04.21
봄밤/권혁웅 봄밤 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한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 ♧...참한詩 2013.04.11
천장호에서/나희덕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거시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참한詩 2013.03.15
걸인/정호승 걸인 정호승 성철 스님 돌아가신 날 인산인해를 이루며 해인사 올라가는 길에 폐타이어를 양쪽 다리에 친친 감고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놓고 엎드려 구걸하는 한 사내를 만났습니다 나는 급히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오늘 돈 좀 벌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큰.. ♧...참한詩 2012.12.18
놀랜 강/공광규 제4회 윤동주상 문학상 대상 공광규 시인 '놀랜 강' 놀랜 강/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빈곳 / 배한봉 빈곳 / 배한봉 암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꽃도 피어 있다. 틈이 생명줄이다. 틈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른다 틈이 생긴 구석. 사람들은 그걸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 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팔을 벌리는 것. 언제든 안을 준비 돼 있다고 자기 가슴 한 쪽을 비워놓은 것. 틈은..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외삼촌 / 고 은 외삼촌 / 고 은 외삼촌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갔다 어이할 수 없어라 나의 절반은 이미 외삼촌이었다 가다가 내 발이 바큇살에 걸려서 다쳤다 신풍리 주재소 앞에서 옥도정기 얻어 발랐다 외삼촌은 달리며 말했다 머슴애가 멀리 갈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상해에 갔다가 북경에 갔다가 만..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새 / 손택수 새 / 손택수 점 하나를 공중에 찍어 놓았다 점자라도 박듯 꾸욱 눌러놓았다 날갯짓도 없이, 한동안, 꿈쩍도 않는, 새 비가 몰려오는가 머언 북쪽 하늘에서 진눈깨비 소식이라도 있는가 깃털을 흔들고 가는 바람을 읽고 구름을 읽는 골똘한 저, 한 점 속으로 온 하늘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 ♧...참한詩 2012.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