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을 / 김현승 가을 /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그립다는 것은 / 이정하 그립다는 것은 / 이정하 //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데 왜 보고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만나지 않아도 그 무엇하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왜 만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립다는 것은 그저 가슴한쪽이 비어온다는 것 당신이 내게 차면 찰수록 가슴 한쪽은 점점 더 비어온다는 것 &l..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인생 / 이기철 인생 / 이기철 인생이란 사람이 살았다는 말 눈 맞는 돌멩이처럼 오래 견뎠다는 말 견디며 숟가락으로 시간을 되질했다는 말 되질한 시간이 가랑잎으로 쌓였다는 말 글 읽고 시험치고 직업을 가졌다는 말 연애도 했다는 말 여자를 안고 집을 이루고 자식을 얻었다는 말 그러나 마지막에 ..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고속도로 4 / 김기택 고속도로 4 / 김기택 트럭 앞에 속도 하나가 구겨져 있다. 부딪쳐 멈춰버린 순간에도 바퀴를 다해 달리며 온몸으로 트럭에 붙은 차체를 밀고 있다. 찌그러진 속도를 주름으로 밀며 달리고 있다. 찢어지고 뭉개진 철판을 밀며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창을 밀며 튕겨나가는 타이..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노숙 - 김사인 노숙 -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응” / 문정희 “응” /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논 속의 산그림자 / 함민복 논 속의 산그림자 / 함민복 물 잡아 논 논배미에 산그림자 드리워져 낮은 물 깊어지네 산그림자 산 높이의 열 배쯤 한 십여 리 어떻게 와서 저리 몸 담그고 있는지 거꾸로 박힌 산그림자 속 바위는 굴러 떨어지지 않고 나무는 움트네 개구리 울음소리 산그림자 깜깜하게 풀어놓던 며칠 밤 .. ♧...참한詩 2012.12.09
[스크랩]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참한詩 2012.12.09
새/류근 새 류근 지혜로운 새는 세상에 와서 제 몸보다 무거운 집을 짓지 않는다 바람보다 먼 울음을 울지 않는다 지상의 무게를 향해 내려앉는 저녁 새 떼들 따라 숲이 저물 때 아주 저물지 못하는 마음 한 자리 병이 깊어서 집도 없이 몸도 없이 잠깐 스친 발자국 위에 바람 지난다 가거라, 『상.. ♧...참한詩 2012.06.24
기억해 내기/조정권 기억해 내기 조정권 혼자 진 꽃. 진 채 내게 배송된 꽃. 발송인을 알 수 없던 꽃. 그 꽃을 기억해 냈다. 슈베르트 음악제가 한 달간 열린 알프스 산간 마을 한가로이 풀꽃에 코 대고 있는 소 떼들이 목에 달고 다니는 방울 그 아름다운 화음에서 ============================================ 피어나는 .. ♧...참한詩 201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