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 지대/김명수 침엽수 지대 김명수 깊은 밤 눈 덮여 고적한 곳에 꼿꼿이 머리를 하늘에 두고 침엽수들이 서 있다 먼 산맥을 이어 내어달리고 싶은 마음이건만 푸르른 정열에 가두어두었다 눈이 내리면 온몸에 흰눈을 이고 바람이 불면 우우 소리를 낸다 일월성신 작은 계절의 변화에도 잎새조차.. ♧...참한詩 2011.11.15
꽃씨/문병란 꽃씨 문병란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히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여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 ♧...참한詩 2011.11.15
향현/박두진 향현 박두진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엇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 들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 ♧...참한詩 2011.11.15
사령/김수영 사령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 ♧...참한詩 2011.10.28
겨울 숲을 바라보며/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 ♧...참한詩 2011.10.28
강 끝의 노래/김용택 강 끝의 노래 김용택 섬진강의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맹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알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몸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 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정.. ♧...참한詩 2011.10.28
모일/박목월 모일 박목월 시인이라는 말은 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 이 낡은 모자를 쓰고 나는 비오는 거리를 헤매었다. 이것은 전신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쭙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 옷만 입을까 보냐. 다만 두발.. ♧...참한詩 2011.10.28
역/한성기 역 한성기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참한詩 2011.10.28
오, 따뜻함이여/정현종 오, 따뜻함이여 정현종 군밤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 버스를 타고 무릎 위에 놨는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갓 구운 군밤의 온기-순간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태양과 집과 화로와 정다움과 품과 그리고 나그네 길과...... 오, 모든 따뜻함이여 행복의 원천이여 ♧...참한詩 201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