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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상시문학상] 존 테일러의 구멍 난 자루 외 4편/ 송찬호

[제3회 이상시문학상 수상작] 존 테일러의 구멍 난 자루 외 4편 송찬호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그 자루의 옆구리에 난 총알구멍으로 존 테일러의 부유한 피와 살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다섯 달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존 테일러의 마지막 시간이 꼭 쓸쓸했던 것만은 아니다 '천국을 ..

[스크랩] 2011년 동양일보 신춘 당선작 끈/정영희

끈 쇠죽 쑤는 저녁이었다 집집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쌀 앉히는 소리로 마을이 저물면 밤이 이슥하도록 두런두런 눈이 내렸다 국화송이 같은 눈송이를 툭툭 털어내며 혈족들 하나둘 모여 들고 풀 먹인 밤을 와시락와시락 눈이 내려 창호지 밖은 불을 켜지 않아도 환했다 시릉 위에 얹혀 있던 해묵은 ..

[스크랩] 외출을 벗다 / 장혜원(2011,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외출을 벗다 / 장혜원 한낮의 외출에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어둑하다 탄력에서 벋어난 하반신이 의자에 걸쳐 있고 허공 한 쪽을 돌리면 촘촘했던 어듬들, 제 몸쪽으로 달라붙는다 의자의 각을 입고 있는 외출 올올이 각의 면을 베꼈을 것이다 이 헐렁한 정류의 한 때와 폭신함이 나는 좋다 실수..

[스크랩]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유빙<流氷>/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유빙 <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

[스크랩]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새는 없다 / 박송이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새는 없다 / 박송이 우리의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5층 베란다 창을 뚫고 온 겨울 햇살 이 창 안과 저 창 밖을 통과하는 새들의 발자국 우리는 모든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난간에 기대지 말 것 애당초 낭떠러지에 오르지 말 것 바람이 불었..

[스크랩]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오늘의 운세 / 권민경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늘의 운세 / 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

[스크랩]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아버지의 발화점 / 정창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아버지의 발화점 / 정창준 바람은 언제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 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 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묻은 몸은 울음의 ..

[스크랩] 2011년 매일신문 시 당선작 - 1770호 소녀 /우광훈

2011년 매일신문 시 당선작 1770호 소녀 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

[스크랩] 2011년 부산일보 시 당선작 - 나무의 문 / 김후인

2011년 부산일보 시 당선작 - 김후인(본명 김혜숙) 나무의 문 김후인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 간다 그 몇 층 사이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 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 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본다 나는 조용..

[스크랩]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_ 홍문숙/ 파밭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_ 홍문숙/ 파밭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