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빈집 머잖아 누군가에게 나눠 줄 집 있다 쪽방 몇 칸과 시상에 번진 피 한 방울 사랑의 바이러스가 속살처럼 되살아나는 그 순간까지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오감五感이 자동으로 감지되는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어 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발표작 2010.12.04
누에보살 누에보살 뽕잎 공양을 하고 첫잠 든 개미누에 어둠의 동굴에 누워 윤회법문을 한다 이승저승 오고감은 한낱 성긴 발 위에서 몸 한번 바꾸는 일 알에서 깨어나 넉 잠을 자고 묵묵히 섶으로, 섶으로 기어올라 집 한 채 지었다 부서질 몸 그 몸속에서 진신사리 같은 비단실 자아내며 훨훨 성자의 반열에 .. ♧...발표작 2010.12.04
누리마루 누리마루* 거센 파도를 타고 떠나 봐 치솟은 물결 꼭대기에 서 보면 온 세상이 한 눈에 다 보일 거야 정상회담장 가는 길섶 팔손이 마중 나와 악수 청하며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마루 밑에 볕 들 날 있다는 듯 생인손 앓는 여덟 손바닥 떡 벌린다 텅 빈 그늘 사이로 짓무른 손금 엉금엉금 기어 나.. ♧...발표작 2010.12.04
그리운 옛집 그리운 옛집 달포 전 새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옛집으로 자꾸 발길이 가닿는 이유는 20여 년간 손때 묻은 문고리가 아직 나를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지방 틈에서 세 들어 사는 잔 개미들이 이사를 가지 못한 속사정도 궁금하지만 간통죄 누명 덮어쓰고 담벼락 한 모퉁이 글썽거리고 있을 담쟁.. ♧...발표작 2010.12.04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우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 ♧...참한詩 2010.12.04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정호승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 ♧...참한詩 2010.12.04
달과 수숫대-貧/장석남 달과 수숫대 - 貧 장석남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나 생각한 다음날 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 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 깁고 있었다 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를 본다 단 두 개의 서까래.. ♧...참한詩 2010.12.04
산정묘지1/조정권 산정묘지1 조 정 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 ♧...참한詩 2010.11.29
누累 /이병률 누累 이병률 늦은 밤 쓰레기를 뒤지던 사람과 마주친 적 있다 그의 손은 비닐을 뒤적이다 멈추었지만 그의 몸 뒤편에 밝은 불빛이 비쳐들었으므로 아뿔싸 그의 허기에 들킨 건 나였다 살기가 그의 눈을 빛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환히 웃으며 들킨 건 나라고 뒷걸음쳤다 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쳤.. ♧...참한詩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