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한테 배우다/복효근 개한테 배우다 복효근 동네 똥개 한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 와 똥을 싸놓곤 한다 오늘 마침 그 놈의 미주알이 막 벌어지는 순간에 나는 신발 한 짝을 냅다 던졌다 보기 좋게 신발은 개를 벗어나 송글송글 몽오리를 키워가던 매화나무에 맞았다 애꿎은 매화 몽오리만 몇 개 떨어졌다 옆엣놈이 공책에 커.. ♧...참한詩 2010.12.30
늙수그레한 공무원의 시원한 말/공광규 늙수그레한 공무원의 시원한 말 공광규 충북 음성군과 음성로타리클럽이 지역특산물인 음성 청결고추를 홍보하는 얼굴을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7년 만에 바꾸었다고 한다 미모지상주의라는 일부 비판론을 잠재우고 농사를 손수 짓는 아줌마가 고추 알리기에 낫다는 판단을 한 거란다 고추아가씨 선발.. ♧...참한詩 2010.12.27
횟집에서 횟집에서 거친 세파에 떠밀려온 바닷물고기들이 깜빡거리는 꼬마전구 불빛 아래서 수중발레하듯 원을 그리며 뽀글뽀글 어리광부리고 있다 수족관 밖에서 군침 흘리며 넘다보는 길손들의 어깨 부딪는 소리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서로 마주보며 윙크하는 숭어 두 마리 누군가의 손아귀에 덥석, 낚아채.. ♧...발표작 2010.12.25
감시카메라 작동 중 감시카메라 작동 중 지금도 어디선가 우주의 감시카메라는 지구별 한 모퉁이서 하루살이처럼 꼬물거리고 있는 나를 빤히 지켜보고 있다 뭇 별들의 가랑이 새로 수 억 겁劫 지나 예까지 휘달려왔을 나의 육신 헐거워진 뼈마디 사이로 찬바람마저 술술 스며드는 오팔 연식 구형이지만 온갖 세파에 잘 .. ♧...발표작 2010.12.25
시는 내 삶의 해우소(解憂所)/정호승 시는 내 삶의 해우소(解憂所) 정호승 어떤 자리에 앉을 때 나는 가능한 한 창을 등지고 앉는다. 창이 통유리로 돼 있어서 바깥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창밖 풍경이 나의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 앉은 상대방이 나를 바라봤을 때 자연히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 ♧...자료&꺼리 2010.12.23
[스크랩] 폐사지처럼 산다 외 14편/ 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외 14편 정호승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 ♧...참한詩 2010.12.18
봄비/정호승 봄비 정호승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 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참한詩 2010.12.18
농무/신경림 농무(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 ♧...참한詩 2010.12.12
선운사에서/최영미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처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 ♧...참한詩 2010.12.05
바람을 업다 바람을 업다 흩어졌다 모여드는 바람 탓에 무릎관절은 늘 삐걱거렸다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진 바람을 업은 어머니, 대청동 꼭대기 판잣집에서 메리놀 병원까지 수백 개의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방울방울 구르는 땀방울 장단에, 바람은 잠이 들기도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허리까지 깁스를 하고 .. ♧...발표작 201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