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2 은행나무2 -비슬산7 그도 나처럼 혼자인 것 같아 가만 다가가 보니 정겹게 마주선 채 환히 웃고 있는 수도암* 은행나무 노부부 외곬으로 행랑채 지키며 백년을 하루같이 거북바위 곁에서 주렁주렁 아들 낳고 딸 낳고 천년을 하루같이 살고 있네 나에게 속지 말라고 되뇌셨던 성철 큰스님의 말씀처럼 알.. ♧...비슬산 사계 2010.05.21
은행나무3 은행나무3 -비슬산8 비바람 화두삼아 일심으로 묵언정진해 온 은행나무-관세음보살 암자 한 모퉁이서 세상 번뇌란 번뇌는 다 녹여버린 듯 온 몸에서 알알이 토해내는 금빛사리 샛노란 법석法席 위로 참새들 사뿐 내려앉아 회향回向 법문 청하며 염불하는 사이 주장자 빼앗아 달아나는 늦가을 햇살 ♧...비슬산 사계 2010.05.21
소재사에 가다 소재사*에 가다 -비슬산9 온통 야단법석이다 법당 앞마당 가랑잎들, 석탑 언저리 기웃거리는 저녁 햇살 등에 업고 돌계단 엉거주춤 내려선다 겹겹이 포개진 눈빛 새로 노잣돈 조르듯 지나가는 풍경소리, 허공으로 내 발꿈치 떠밀어 올린다 맨 아래 깔린 잎은 의식 불명 상태 내 발목 꽉 잡았다 스르르 .. ♧...비슬산 사계 2010.05.21
가을 속의 나 가을 속의 나 -비슬산10 내 가슴 속에서 웅크리고 울던 귀뚜리 울음소리, 밤새 번지고 번져 메아리처럼 번져 산봉우리 비며대며 날아오른다 문필봉 휘돌아 관기봉 너머 눈 푸른 도성선원 스님들 마음 귀퉁이 지나 바위틈 새어나오는 법문 몇 모금 받아 마시고 내 품으로 되돌아오는 메아리 물안개 포근.. ♧...비슬산 사계 2010.05.21
비슬산 사계 비슬산 사계 -비슬산11 산이란 산은 나이가 들수록 맑고 향기롭다 가파른 만큼 높고 푸른 산은 돌을 갈아 밭을 매고 별빛 쪼아 군불 지피는 사람들을 제 품에 살게 하고, 떠나보낸다 진달래 산천에 고인古人들 돌아와 옛날 옛적 숨겨둔 사랑 찾아 헤매다 솟대처럼 불쑥 솟은 바위틈 양지 녘에 수줍은 연.. ♧...비슬산 사계 2010.05.21
진오선사 다비식 진오선사眞悟禪師 다비식 -비슬산12 생살 굽는 냄새 맡고 어디선가 날아든 까마귀 떼 구슬프게 울어대는 이승의 종착역 출발지 도착지도 없는 그저, 한 영혼의 이름과 접수번호만 오롯 적힌 저승승차권을 받아들고 화장장 입구에 들어섰다 출발 신호와 함께 전광판 한가운데로 붉게 아로.. ♧...비슬산 사계 2010.05.21
가난한 날의 잔상1 가난한 날의 잔상殘像1 퉁퉁 부르튼 종아리에 찰거머리 서너 마리 빚쟁이처럼 달라붙어 떼를 써도 그저 아무 일 없는 양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시는 당신 삭은 밀짚모자 푹 눌러쓰고 지렁이 굼벵이 더부살이하는 구불구불한 밭뙈기 고랑을 빚쟁이 엎듯 줄줄 갈아엎으시는 당신 순사.. ♧...비슬산 사계 2010.05.21
가난한 날의 잔상2 가난한 날의 잔상殘像2 어릴 적 나는 재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박넝쿨처럼 몰래 담벼락 타고 지붕으로 살살 기어올라가 폭 삭은 지푸라기 만지작거리며 어렴풋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내었지 봉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햇나락 쭉정이 키질하시던 할머니 풀죽은 목소리로 “애비야, .. ♧...비슬산 사계 2010.05.21
어른이 되고 싶었지 어른이 되고 싶었지 소꼴 베러 뒷골 가 도랑가재 잡아 구워먹고 허수아비 속 태우며 콩서리하다 그만 밭주인에게 붙잡혀 혼이 나던 어린 녀석 옥수수 대궁처럼 성큼 자라 누군가에게 베풀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 수염만 길게 기르면 될 거라 생각하고 몇 날 며칠 할머니 머리맡에 빠진 흰 머리칼 .. ♧...비슬산 사계 2010.05.21
꿈속의 어린왕자 꿈속의 어린왕자 어젯밤 꿈속에서 별 동네 언저리 서성이는 어린왕자를 어슴푸레 보았어요 텅 빈 사막에서 보이지 않는 별들의 이름을 외며 홀로 별똥을 찾고 있었어요 소곤소곤거리는 아기별들의 얘기를 들으며 별똥을 찾고 있었어요 우주 한 모퉁이로 새벽이 터벅터벅 걸어올 무렵 북녘 하늘 저 멀.. ♧...비슬산 사계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