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월 꼬마 아이 하나 없는 아파트 놀이터에 바람 혼자 그네를 탄다 두 발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 오므렸다 폈을 것이다 나뭇잎처럼 어수선해진 나의 세포 조각들이 창 너머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 ♧...비슬산 사계 2010.05.21
타향살이 타향살이 지난겨울 남도 어느 섬에서 내 뜰 한구석으로 이사와 어른스레 정붙이고 사는 아기 동백나무 한 그루 춘삼월이 봄인 줄 알고 앳된 눈 살몃 내밀며 고향 생각던 날 밤 때 아닌 폭설이 퍼부었다 겨우내 웅크린 그리움마저 꽁꽁 얼어붙은 새벽녘 누군가 낯선 눈길 틔워주고 간다 겨우 눈뜬 어린 .. ♧...비슬산 사계 2010.05.21
감시카메라 작동 중 감시카메라 작동 중 지금도 어디선가 우주의 감시카메라는 지구별 한 모퉁이서 하루살이처럼 꼬물거리고 있는 나를 빤히 지켜보고 있다 뭇 별들의 가랑이 새로 수 억 겁劫 지나 예까지 휘달려왔을 나의 육신 헐거워진 뼈마디 사이로 찬바람마저 술술 스며드는 오팔 연식 구형이지만 온갖 세파에 잘 .. ♧...비슬산 사계 2010.05.21
봄나들이 봄나들이 밤새 누가 울고 갔나 그 여음餘音 따라가 닿은 앞산공원, 실안개 걷힌 길섶 한 모퉁이서 개나리처녀와 벚나무노총각이 혼례식을 올린다 봄의 주례로 나리 양과 벚 군이 향긋한 바람 몇 모금 마시며 입맞춤하자 꽃보라 휘날리는 허공으로 새들의 축하 노래 울려 퍼지고 어느 새 하객들과 일일.. ♧...비슬산 사계 2010.05.21
비둘기 주례를 서다 비둘기 주례를 서다 -달성공원 까치집 다섯 채 모여 사는 느티나무 아래서 지킴이가 된 양 텅 빈 둥지 올려다보던 중 보얀 드레스 입은 비둘기 한 쌍이 벚꽃 세례를 받으며 내 그림자 속으로 다정히 걸어들어와 살몃 절을 하듯 눈웃음 짓는다 관풍루* 언저리서 축하 노래 부르는 원앙오리 떼 마냥 난 엉.. ♧...비슬산 사계 2010.05.21
바다 스케치 바다 스케치 -소매물도 폐교에서 폐교가 되어버린 소매물도 분교 누군가 그리다만 한 폭의 그림처럼 아쉬움 가득 머금은 채 섬 꼭대기에 붙어 있다 펄럭이는 도화지 너머로 메밀꽃* 하얗게 피어나고 통통배 한 척이 물방개처럼 떠돈다 비스듬히 누워 잠든 교문 앞에서 아침 햇살이 출석을 부른 듯 도리.. ♧...비슬산 사계 2010.05.21
아카시1 아카시1 우윳빛 드레스를 입은 오월의 신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온 몸이 성감대인 듯 숨구멍마다 요염한 귀걸일 달고 바람결 따라 눈웃음치는 향기 벌들은 금세 오금이 저리다 입술 타든 첫날밤처럼 ♧...비슬산 사계 2010.05.21
아카시2 아카시2 -S에게 가슴 한복판으로 물길 지나가는 오월이면 무뎌진 나의 혓바닥에도 너의 향기 가득 스며온다 겨우내 군침 흘린 꿀벌처럼 올 봄엔 훨훨 네게로 날아가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입술자국 하나 숨겨두고 싶다 ♧...비슬산 사계 2010.05.21
가을 하늘 가을 하늘 엄마 품속처럼 와락 달려가 껴안기고 싶은 드넓은 가슴 해맑은 얼굴 새털구름 연지 곱게 바르고 고추잠자리 앞세우며 저녁산책 나온 그대 시집간 나 어린 딸 신접살림 보러온 듯 이 봉우리 저 봉우리 기웃거리다 몰래 눈시울 붉힐 것만 같은 어릴 적 소고삐 풀어놓은 채 방아깨비 손잡고 풀.. ♧...비슬산 사계 2010.05.21
호우주의보 호우주의보 등이 휜 석류나무 가지 사이로 천둥번개가 생떼 부리며 지나간다 겨우 눈뜬 아기 석류들마저 감전이 된 듯 피를 흘리며 바르르 떤다 전류가 흐르는 장대 빗줄기를 타고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던 미꾸라지들도 어느 새 길바닥 여기저기 떨어져 퍼덕거린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전봇줄에 날아 .. ♧...비슬산 사계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