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추석 무렵의 석류, 추석 무렵의 몇 해 전 눈 내린 겨울 어느 외진 길섶에서였습니다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 주워다 집 마당 한켠에 무심히 심어놓았더니 담벼락 타고 오른 호박넝쿨 사이로 석류가 듬성듬성 고갤 내밀었습니다 무덥던 올 여름 모진 비바람에도 그 흔한 감기몸살 한번 하지 않고 거뜬히 버텨낸 아기.. ♧...비슬산 사계 2010.05.21
강천산 폭포 강천산 폭포 축 늘어진 산허리 꽉 잡아당겨 새끼 꼬듯 엮어놓은 구름다리 위에서 바싹 말라버린 계곡을 가만히 내려다보노라면 산등성이마다 호랑이 발톱처럼 돋은 암벽을 타고 수직 낙하하는 물줄기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강천사* 법당 마주한 길섶 텅 빈 까치집 한 채 품어 안고 무심 법문하듯 우두.. ♧...비슬산 사계 2010.05.21
우포늪에서 우포늪에서 -노랑부리저어새 람사르 총회가 열리고 있는 2008년 10월 경남 창녕 우포늪 멸종 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205호인 노랑부리저어새도 귀한 손님으로 참석했다 누군가 띄운 기별을 받은 듯 한 달 남짓 서둘러 찾아온 노랑부리저어새 주걱 모양의 긴 부리 넙죽 벌리며 좌우로 연신 물 속을 휘젓.. ♧...비슬산 사계 2010.05.21
자연휴양림에서 자연휴양림에서 포로된 학도병처럼 가슴에 이름표 달고 숲 속에 에워싸인 어린 단풍나무 몇 그루 수 천 볼트 흐르는 전선줄을 온몸에 휘감고 밀려드는 어둠 밀어내며 언덕배기 줄지어 서 있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 살려는 저 어린 것들에게 누가 오랏줄 걸쳐놓고 갔나 손발이 저려 와도 기지개 한 번.. ♧...비슬산 사계 2010.05.21
농심農心 농심農心 우르과이 라운드로 기죽은 농심 주인도 없는 논배미 한구석에 여야로 갈라 앉아 모판을 짠다 머잖아 고향 떠날 올챙이들 마냥 잇몸 가려워 오물거리는 볍씨 보살 같은 흙, 겨드랑이 새로 뭇 영혼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어우렁더우렁 살고 싶어라 ♧...비슬산 사계 2010.05.21
자본주의의 모순 자본주의의 모순 쌍둥이 빌딩이 먼지처럼 사라진 2001년 9․11 테러 이후 들뜬 미국의 자본주의는 사망 유예선고를 받았다 7년이 지난 오늘 흑사병처럼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21세기 미국 발 금융 대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남극의 빙하를 보는 듯 이젠, 나의 시력마저 가물 가물거릴 뿐 ♧...비슬산 사계 2010.05.21
어떤 발원 어떤 발원 영변의 약산 진달래처럼 천길 낭떠러지 내려다보며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마는 노인들처럼 버림받은 미국소가 청소년들처럼 사랑에 굶주린 호박벌이 연예인들처럼 악플로 시달리던 닭과 오리가 옥탑 방 한구석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자살했다는 긴급뉴스 누.. ♧...비슬산 사계 2010.05.21
횟집에서 횟집에서 거친 세파에 떠밀려온 바닷물고기들이 깜빡거리는 꼬마전구 불빛 아래서 수중발레하듯 원을 그리며 뽀글뽀글 어리광부리고 있다 수족관 밖에서 군침 흘리며 넘다보는 길손들의 어깨 부딪는 소리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서로 마주보며 윙크하는 숭어 두어 마리 누군가의 손아귀.. ♧...비슬산 사계 2010.05.21
현해탄을 건너다 현해탄을 건너다 -선상에서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경음악 틈새로 울려 퍼지는 뱃고동소리 바닷길이 열리고 항구의 불빛 점점 뒷걸음질쳐 오면 나는 가만 눈을 감는다 누군가 허전한 배의 꼬리 물고 자꾸 뒤따라오는 것만 같다 여태 무심히 대했던 조국 하늘의 별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겹게 숨.. ♧...비슬산 사계 2010.05.21
봄 봄 겨우내 떨며 지낸 길거리 나목들마저 눈 부릅뜨고 일제히 함성 지르던 4월 19일 새벽, 그대는 어디서 봄을 맞이하였는가? 숨죽여 살아온 세포들은 늘 허공 어딘가에 새순 틔우고 싶다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그러하듯 뿌리 깊은 나무는 언제나 낯선 길 위에서도 새봄의 기억 더듬으며 혁.. ♧...비슬산 사계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