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발자국 공룡, 발자국 -상족암에서 누가 이토록 뜨겁게 살다 갔나 외진 바닷가 한 모퉁이 망사 같은 잔솔가지 살몃 걸치고 알몸으로 길게 드러누운 병풍바위는 아직도 수 억년 전의 추억을 머금은 채 누군가 남기고 간 발자취의 주인을 찾고 있으니 까마득한 전전생의 인연 찾아가듯 이제, 태초의 몸짓으로 한 .. ♧...비슬산 사계 2010.05.21
갓바위 돌부처 갓바위 돌부처 팔공산 관봉 평갓 머리인 돌부처 무슨 영험으로 양약을 빚는지 온 세상 떠도는 병이란 병은 향불 사르듯 훌훌 날려버리시고 입시철이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안통의 묘리로 쪽집게 과외마저 하시니 다음 생엔 저 돌부처의 아들로 환생하고 싶다 ♧...비슬산 사계 2010.05.21
매미 매미 운수납자처럼 이골저골 떠돌며 한 울음으로 남긴 무심법문 허공 뜰에 가득 채워두고 홀연, 삼매에 든 선승 텅 빈 나뭇가지에 겉옷 한 벌 벗어둔 채 어디론가 훌훌 떠나버린 ♧...비슬산 사계 2010.05.21
유등연지에서 유등연지*에서 연잎에 기댄 개구리들이 가랑이 새로 초승달을 낳는다 와글와글 야단법석이다 천지간 탯줄 끊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목마른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염불소리 같기도 하다 어언, 무언의 소리로 스며들었다 연蓮봉오리에 걸터앉은 아기부처의 눈썹 가로 염화미소 번지는 순간, 어디선가.. ♧...비슬산 사계 2010.05.21
인연 인연 몇 해 전 때 아닌 폭설이 내린 어느 봄날 오후 학교 간 아들놈 마중 갔다 돌아오는 길에 경운기 바퀴자국 꽉 물고 떨며 누워 있는 어린 나무 한 그루 만났지 어디론가 실려가다 먼 산을 보았는지, 그만 미끄러져 만신창이가 된 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눈빛이었어 저 홀로 험한 세상 헤치며 .. ♧...비슬산 사계 2010.05.21
선운사 동백나무 선운사 동백나무 지난겨울 어느 날 새벽 지장성지 도솔암* 법당에서 백 여덟 번 넙죽 절을 하고 무심히 외길 따라 내려오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우연히 눈 마주친 선운사 동백나무 대웅보전 뒤뜰에서 묵언정진 중인 저 나무들도 이곳에 뿌리내리기 전까지는 나처럼 한낱 바람기 많은 .. ♧...비슬산 사계 2010.05.21
가을 죽비 가을 죽비 나뭇가지가 연신 초승달 어깨를 후려친다 삼보일배 하는 낙엽들의 행렬이 장엄하다 탁발 나선 갈바람의 바랑 속으로 바르르 떨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마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비슬산 사계 2010.05.21
둥지 둥지 새장에 갇혀 살다, 해거름 녘 힘겹게 빠져 날아온 새 한 마리 산꼭대기에서 식은땀 흠뻑 젖은 날개를 펴고 둥지조차 하나 없는 도심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느 새, 탈주범 찾아나섰나 경찰차들의 사이렌 소리 들려오고 길거리는 온통 동맥경화에 걸린 듯하다 아스팔트 속에 겨우 뿌리내린 나무.. ♧...비슬산 사계 2010.05.21
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늦가을 이른 아침 잔잔한 경음악이 흐르는 달성공원 출입문 지붕 위에 진을 치고 밤새 토성을 지킨 비둘기 떼 한 무더기 잔디밭으로 내려앉아 하루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듯 고개 숙이며 원을 그린다 지팡일 짚고 산책 나온 할머니 한쪽 수족을 떨며 비둘기 곁으로 다가와 손주 덥석 품어 .. ♧...비슬산 사계 2010.05.21
거미 거미 떠돌다, 또 날이 저문다 의뭉스러운 겹거미 한 마리가 허공에 집을 짓는다 석류 입술에 살몃 기댄 햇살 몇 줌 주워 기둥 세우고 수런거리는 갈바람의 그늘 아래 한가로이 걸터앉아 투기꾼마저 눈치 채지 못한 그곳에 얼기설기 줄을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고추잠자리 서너 마리가 하룻밤 묵어갈 .. ♧...비슬산 사계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