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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언덕 / 성향숙

오후의 언덕 성향숙 오늘의 종착지는 언덕입니다 애프터눈 티 카페, 오후만 존재하는 계절 삼단 접시의 휴식이 나오고 나는 차근차근 올라가 언덕의 체위를 호흡합니다 하이힐처럼 우뚝 흥겨운 바람입니다 수다 떨기 좋은 이파리와 노랑국화가 흘러가는 언덕, 멈추면 눈 감기 좋은 햇살이 스며듭니다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24층에서 뛰어내린 영화배우가 여기 있다는데 죄책감 없이 호흡합니다 오랜 발목이 저릿합니다 오후만큼 달콤한 죽음을 수혈하기 좋은 언덕 굳은 발바닥은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응답 없는 해피투게더의 비상구는 나른한 햇살이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미남 배우를 만납니다 마지막 접시가 추가되고 근근 이어지는 오후지만 배우와 나의 간격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고용와 그늘을 구분 짓는 언덕을 넘어 관념들, 침묵들, 안..

♧...참한詩 2021.10.23

소가죽 소파 / 정익진

소가죽 소파 정익진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 사들였다. 거실에 가둬 놓고 우리는 소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뻣뻣했던 소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소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의 등 뒤에 누워 잠들기도 하고 소의 배 위에 올라타 오랜 시간 TV도 보고 책도 읽고 간식도 먹었다. 특히 우리 집은 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각자의 몸무게를 던진다거나 옷을 있는 대로 걸쳐 놓기도 하고 과도를 잘못 던져 목 부위가 찔리기도 했다. 등뼈가 휘어질 정도로 심한 장난을 친 때문인지 소의 발목이 부러졌다. 임시로 부목을 대어 주고 붕대만 감아주었지 제대로 된 치료는 해주지 않았다. 소는 소였다. 한마디 아프다는 소리 하지 않았다. 소가 우리 집에 온 지 십 년이 넘어간다. 소의 껍질이 완전히..

♧...참한詩 202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