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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라는 개犬 외 3편 / 김겨리-김명배 문학상

안개라는 개犬 김겨리 나무와 집과 소리와 여명까지 삼키는 잡식성 맹견 온몸이 어금니와 식도로 된 독종이다 컹컹 짖을 때 날리는 축축한 비말은 번식세포, 안개는 바람의 병법으로 빠르게 영역을 점령한다 부드러운 이빨로 무엇이든 질겅질경 씹다 통째로 삼키는 안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흡혈성 식도를 가진 안개는 아침이 주식이다 안개의 먹이사슬들은 눈이 퇴화되는 대신에 청력이 예민하다 나무도 돌도 물도 풀잎도 모두 청력이 발달된 종들 상처의 바탕, 울음의 면적, 고통의 질감처럼 안개를 개복하면 온갖 씨앗들이 발아한다 안개의 부리부리한 눈을 본 적이 있는가 마주치면 송두리째 빨려들 듯한 무자비한 혼곤으로 꼼짝없이 당하고야 마는, 촉촉이 젖는 공포에 대해 상온을 밑도는 체온이라 냉혈인 듯하지만 그의 소화기관을 거쳐 ..

방음벽 / 마경덕

방음벽 마경덕 돌진하는 새들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봄부터 이어진 박새 참새 곤줄박이의 투신이 지역신문 헤드라인이 되려면 더 많은 새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새들만이 아니었다 사차선 차도에서 튕겨 나와 벽과 충돌한 굉음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신기루와 비행이 만나는 지점, 이곳은 묘지였다 질주하던 속도와 정면충돌한 사건이 중앙선을 넘고 벽을 뛰어넘었다 무단침입한 잡음은 아파트보다 높이 자랐다 최대한 키를 높여 달려드는 소리를 죽이겠다고 잠을 설친 의견들이 둘러앉았다 방음벽은 마지막 배수진 주민들은 새들 따위는 금방 잊었다 새의 죽음을 이야기한 시인이 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에 곧 입을 다물었다 담쟁이를 심자던 숲해설가도 일조권에 밀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새들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새들은 스스로 머리를..

♧...참한詩 2021.09.03

한 사람의 나무 그림자 / 이병률

한 사람의 나무 그림자 이병률 눈 그친 깊은 밤 산사에서였다 새 울고 마음이 더욱 허전하여 창호 바깥의 달빛을 가늠해 보는데 옆 방에 묵던 여행자가 내 방 앞에 서서 달빛을 가로 막고 있었다 그림자는 먼 곳을 향하여 서서 부르르 몸을 떨더니 옷을 하나 둘 벗어 허공으로 던지는 듯하였다 그것은 푸르륵 푸르륵 소리를 내며 나무에 올라 앉아 신산스럽게 흔들리는 듯하였다 잠시 정적이 더 깊어진 듯도 하였다 달빛이 진해졌다고도 느꼈다 문을 열어 나 또한 마루에 서서 사방을 더듬다 어디론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사람의 옷 껍질을 벗고 네 발로 기어갔다는 것을 어둠 한가운데 걸린 목어가 그 발자국들을 향해 진저리쳤다는 것을

♧...참한詩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