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732

불이不二·2

불이不二·2 김욱진 맨발로 숲길을 걷는다 더럽게 맨발로 와서 온 숲을 오염시키느냐고 새들은 재잘재잘 돌멩이들도 구시렁구시렁 딴지를 건다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어떤 흙은 새끼발가락 새로 끼어들어 이 발가락새끼 간지러워 미치겠다며 깔깔 웃어재끼고 또 어떤 흙은 발바닥에 살살 달라붙어 젖먹이처럼 칭얼거린다 살과 살 사이 끼어들고 달라붙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 나는 흙의 발가락이 되고 흙은 나의 발바닥이 되는 순간 나의 발은 순한 흙발이 된다 흙이 숲길을 걷는다 맨발로 걸으니, 그러니 심사가 둘이 아님을, 뼈저리게 발가락은 오므라들었고 발바닥은 펴졌다 나도 모르게 외진 숲길 한 모퉁이서 맨발과 맨흙이 조용히 만나 둘이 하나가 된다 숲이 된다

♧...발표작 2021.08.13

지우개 / 송순태

지우개 송순태 잘못 써내려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편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참한詩 2021.08.09

노래의 눈썹 / 장옥관

노래의 눈썹 장옥관 새의 발가락보다 더 가난한 게 어디 있으랴 지푸라기보다 더 가는 발가락, 햇살 움켜쥐고 나뭇가지에 얹혀있다 나무의 눈썹이 되어 나무의 얼굴을 완성하고 있다 노래의 눈썹, 노래로 완성하는 새의 있음 배고픈 오후, 허기 속으로 새는 날아가고 가난하여 맑아지는 하늘 가는 발가락 감추고 날아간 새의 자취, 쫓으며 내 눈동자는 새의 메아리로 번져간다

♧...참한詩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