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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 송순태

지우개 송순태 잘못 써내려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편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참한詩 2021.08.09

노래의 눈썹 / 장옥관

노래의 눈썹 장옥관 새의 발가락보다 더 가난한 게 어디 있으랴 지푸라기보다 더 가는 발가락, 햇살 움켜쥐고 나뭇가지에 얹혀있다 나무의 눈썹이 되어 나무의 얼굴을 완성하고 있다 노래의 눈썹, 노래로 완성하는 새의 있음 배고픈 오후, 허기 속으로 새는 날아가고 가난하여 맑아지는 하늘 가는 발가락 감추고 날아간 새의 자취, 쫓으며 내 눈동자는 새의 메아리로 번져간다

♧...참한詩 2021.08.09

낙동강이여 깨어나라 / 신천희

낙동강이여 깨어나라 신천희 낙동강은 지금 묵언 중이다 골골에서 재잘거리며 모여든 개울물들이 웅성거리다가 모두 입을 닫아걸었다 이제 무명의 허상들 모두 침잠시켜버리고 고요히 무애자재한 강물로 자정하며 홀로 맑아져야 한다 찰나의 걸림도 없는 반야의 물살로 흐르며 녹조를 만나면 녹조를 죽이고 와류를 만나면 와류를 죽이고 피안의 바다에서 오도송을 읊으며 법희의 춤사위를 펼치기 위해 밤낮없이 수행 중인 낙동강은 지금 묵언 중이다

♧...참한詩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