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퇴고 길상호 앉은뱅이 밥상을 펴고 시 한 편 다듬는 저녁, 햇살이 길게 목을 빼고 와 겸상으로 앉는다 젓가락도 없이 시 한 줄을 쭈욱, 뽑아들더니 허겁지겁 씹기 시작한다 너무 딱딱한 단어 몇 개 가시처럼 발라내놓고 익지 않은 수사들은 퉤퉤 뱉어내놓고, 넘길 게 하나 없었는지 잇자국 가득한 언어들 수북이 밥상 위에 쌓인다 노을보다 더 벌게져서 얼른 창을 닫고 돌아오니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발목을 잃은 앉은뱅이, 먹을수록 허기진 밥상은 잠시 물려놓기로 한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모르는 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 천상병詩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