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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건너다 / 곽효환

마당을 건너다 곽효환 그 여름밤도 남자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들이 지키는 남쪽 지방도시 변두리 개량한옥 어둠을 밀고 온 저녁바람이 선선히 들고 나면 외등 밝힌 널찍한 마당 한편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저녁상을 물린 할머니를 따라 평상에 자리 잡은 누이와 나 그리고 막둥아! 하면 한사코 고개를 가로젓던 코흘리개 동생은 옥수수와 감자 혹은 수박을 베어 물고 입가에 흐르는 단물을 연신 팔뚝으로 훔쳐냈다 안개 같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할머니는 그날도 마작판에 갔는지 작은댁에 갔는지 모를 조부를 기다리며 파란대문을 기웃거렸고 부엌과 평상을 오가는 어머니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어둠이 더 깊어지면 할머니는 두런두런 일 찾아 항구도시로 간 아버지 얘기를 했고 마당을 서성이던 어머니는 더 과묵해졌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참한詩 2021.05.20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 이근배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이 근 배 어느 날 문득 서울 사람들의 저잣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산이 내 곁에 없는 것을 알았다 낮도깨비같이 덜그럭거리며 쓰레기더미를 뒤적이며 사랑 따위를 팔고 있는 동안 산이 떠나버린 것을 몰랐다 내가 술을 마시면 같이 비틀거리고 내가 누우면 따라서 눕던 늘 내가 되어 주던 산을 나는 잃어버렸다 내가 들르는 술집 어디 만나던 여자의 살 냄새 어디 두리번거리고 찾아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산이 가버린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참한詩 2021.05.20

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참한詩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