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이데아 이진엽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호수는 둥근 파문으로 고이 받아준다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내리쳐도 호수는 크고 작은 바퀴들을 만들어 물의 살갗 위로 부드럽게 굴러가게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물 위에 몸을 던질 때면 둥근 팔 안에 안겨버린다 물의 가슴에서 밤새 감기는 저 신비한 태엽들 원형은 분명 우주의 고요한 근원이다 빗방울이 호수의 눈썹을 들출 때마다 물 위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눈동자들 그 동공에 비치는 우리들의 얼굴도 온갖 열매들과 따뜻한 자궁마저도 모두가 물의 원형을 복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