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734

물의 이데아 / 이진엽

물의 이데아 이진엽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호수는 둥근 파문으로 고이 받아준다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내리쳐도 호수는 크고 작은 바퀴들을 만들어 물의 살갗 위로 부드럽게 굴러가게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물 위에 몸을 던질 때면 둥근 팔 안에 안겨버린다 물의 가슴에서 밤새 감기는 저 신비한 태엽들 원형은 분명 우주의 고요한 근원이다 빗방울이 호수의 눈썹을 들출 때마다 물 위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눈동자들 그 동공에 비치는 우리들의 얼굴도 온갖 열매들과 따뜻한 자궁마저도 모두가 물의 원형을 복제한 것이다

♧...참한詩 2021.05.31

나무도 꿈꾼다 / 이종대

나무도 꿈꾼다 이종대 나무도 분명 걷고 싶을 때 있는 것 같다 걷고 걸어서 좀 더 트인 곳으로 탈출하듯 달려가고 싶은 것 같다 그러기에 발가락 꿈틀거려 두터운 흙더미 밀쳐내며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지 않는가 걷고 싶기에 보도블록도 지긋이 들어 올리고 근육질 허벅지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나무도 분명 날고 싶은 때 있는 것이다 날고 날아서 높은 곳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가지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제 몸통 밀어 올리지 않는가 제 살 내어주며 키운 새들을 저렇게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무도 걷고 뛰고 날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돌 틈 비집어 뿌리 길게 내리고 태양 향해 손 길게 뻗으며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천에서 보이는 잣나무가 서울에서도 보이고 평양에서도 보이는..

♧...참한詩 2021.05.30

김욱진 시인 고향 시편-행복 채널 외 16편

행복 채널 김욱진 가끔 채널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묏등에 염소 고삐 풀어놓고 술래잡기하며 뒹굴던 코흘리개 시절로 어머니 손잡고 산비탈 굽이굽이 돌아 외갓집 가는 길 어스름 서리하던 복숭나무 아래로 꽁보리밥 싸가는 게 부끄럽다고 생떼부리며 드러누웠던 골목길로 고주박이 한 짐 걸머진 지게머리 참꽃다발 수북 꽂아 버텨두고 도랑가재 잡아 구워먹던 불알들 곁으로 성황제 지낸 고목 아래 함초롬 밝혀둔 불 종지 몰래 주워와 시렁에 모셔놓고 집안 액운 다 태워달라며 밤새 빌던 정월 대보름 새벽 달빛 속으로 푹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 내 맘속의 주파수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행복채널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녹색 신호등 앞에서 강생이 한 마리가 내 채널을 휙, 돌려놓고 갈 때도 있다 한두레마을 염소 ..

♧...자료&꺼리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