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이다 / 문인수 미완이다 문인수 어딜 멀리 갔다가 되돌아가는 길인가 보다. 인각사 돌부처 한 분이 천년 비바람에 많이 닳았다. 거의, 한 덩어리 바위에 가깝다. 그 앞에 찍은 내 독사진이 있다. 왕복 어디쯤서 만나 잠시 겹친 것일까, 들여다보니 둘 다 미완이다, 지쳐 돌아가는 길이 함께 적적, 막막할 뿐이다. ♧...참한詩 2021.06.09
용서 / 이산하 용서 이산하 어릴 적 새벽마다 옆집의 달걀을 몰래 훔쳐 먹었다. 어른들이 이빨에 톡톡 쳐서 먹는 게 너무 멋있어서 나도 계속 훔쳐서 흉내를 냈다.... 1주일 후 옆집 아저씨가 알도 못 낳는 게 모이만 축낸다는 이유로 암탉을 잡아 삶았다. 우리 집에도 맛보라며 삼계탕 한 그릇을 가져왔다. 아버지가 장남이 먹어야 한다며 나한테 주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난 삼계탕을 먹은 적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누명으로 목숨을 잃은 50년 전의 암탉에게 용서를 빈다. ♧...참한詩 2021.06.06
남루에 대하여 / 이상국 남루에 대하여 이상국 지난 해 봄 시집을 묶으며 몸을 전부 비웠는데 아직 시가 남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때 그가 찾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 속을 다 내보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거나 어쩌다 저 맘에 드는 생각을 해내고는 길 가다 혼자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생은 날마다 상처를 밀치고 올라오는 새살 같은데 나의 시는 남루와 같아서 어느 날 깊은 산속에 데리고 가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오고 싶다 ♧...참한詩 2021.06.03